한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고딩엄빠>라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고등학생이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미성년자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함께 힘을 합쳐 아이를 잘 키우는 커플도 있지만, 홀로 아이를 떠안아 힘들게 사는 애처로운 모습도 보인다.
<틈새 보이스>의 주인공 김무, 17세 고등학생이다. 엄마 김난희가 17세 때 김무를 가졌고 사귀던 대학생 오빠는 무책임하게 사라졌다. <틈새 보이스>는 <고딩엄빠>가 방송하기 훨씬 전인 2016년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마치 <고딩엄빠>의 후속 편을 보는 듯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 표>로 두 번이나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황선미 작가의 작품이다. 대개의 청소년 소설은 가벼운 문장으로 스토리를 편하게 이어가는 편인데, <틈새 보이스>는 문학성 짙은 문장으로 섬세하고 진중하게 풀어나간다. 의미를 새겨가며 읽으면 우울하고 머리 아픈 현실이 풀려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생활설계사로 일하는 김난희는 아이를 혼자 키우기 힘들어 두 번이나 다른 데 맡긴다. 김무는 자신이 두 번 버려졌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방황을 많이 한다. 공부는 뒷전이지만 그림은 잘 그리고, 학교는 빠져도 미술 학원은 꼭 가는 김무가 자주 들르는 곳이 제일분식이다. 큰 건물 사이에 끼어 있어 ‘틈새’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과 종종 김밥과 라면을 먹지만 김무는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에게 고분고분하지 못한 아들이면서 아빠에게 분노하는 김무, 과거에 치명적인 사건까지 겪었다. 틈새에서 어울리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을 매개로 과거에 알았던 인물들과 연결된다. 학교에서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곱씹으며 다가가지 못한다.
사연 많은 김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주인공이다. 출생의 비밀에다 반항기 가득한 김무에게 엄마는 “고등학교는 제발 졸업하라”고 당부한다. 틈새에서 어울리는 윤, 기하, 도진도 김무 못지않은 사연을 한 보따리씩 안고 있다. 다니는 학교도 다르고 서로의 형편도 모르는 넷은 각자가 털어놓은 몇 개의 정보로 상대를 파악하게 되는데, 잦은 만남이 결국 우정으로 맺어지는 과정도 독특하다.
소설 중간에 툭 튀어나온 영빈, 블랙콜이라는 새로운 공간, 그곳에서 노래하는 더스티로 인해 추리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가게 된다. 거기에 윤이 셰프 수업을 받는 레스토랑과 그곳에서 본 펑키머리 남자까지 풀어야 할 숙제다. 엄마와의 갈등, 전학을 가야 할 처지에 놓인 학교 상황 등 김무가 처한 복잡함에 추리까지 더해지면서 소설은 점점 흥미를 더해간다.
청소년 시절에는 가급적 걱정할 일 없이 공부에만 매진하면 좋겠지만 이 땅에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일찍 겪은 고난이 불운이기만 할까. 삶의 자양분이 되어 인생을 멋지게 헤쳐나갈 힘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얕은 일탈의 재미에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경우도 생기니 안타까운 일이다.
김무는 어떨까. 너무 일찍 엄마가 되어 시련을 한가득 겪은 김난희 여사, 유전자 검사로 아빠임이 밝혀진 의사, 옥상에서 뛰어내리다 나무에 걸려 중상을 입은 도진, 작은아버지의 학대로 생긴 흉터를 타투로 가리는 해리까지. 누구 하나 김무를 경쾌하거나 즐겁게 만드는 인물이 없다. 그럼에도 김무는 묵직한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하나하나 헤쳐나간다.
<틈새 보이스>의 김무를 책 속에서 진지하게 만나보라. 김무는 닥쳐오는 일 가운데 제외할 것과 추진할 것을 어느 순간 현명하게 결정한다. 불량스러운 듯 복잡다단한 김무의 행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인생의 한 갈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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