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식, 한기가 엄청나네", "내가 한 20년 주식하고 살았지만, 이 종목은 도저히 모르겠다"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고, 매우 험한 게(지난해 유상증자 공시)", "대살굿을 해보죠, 주가 오르게" "종목 하나 잘못 건드리면 나부터 시작해서 가족까지 싹다 줄초상이야".
최근 인터넷 포털 종목토론방에서 가장 떠들썩한 주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극장 대장주 역할을 하고 있는 CJ CGV입니다. 요즘 극장 화제작인 '파묘'의 맛깔나는 대사를 패러디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른 주주들과 공유하며 '동병상련(同病相憐·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의 처지를 걱정하다)'의 감정을 나누는 글들이 매일 올라옵니다.
지난해 8월 1만400원까지 올랐던 CJ CGV 주가는 대규모 유상증자 결정 이후 급락했습니다. 2개월 만에 상장 이후 역대 최저가(4670원)를 기록하더니 현재 주당 5600원대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국내 극장 관람객이 사상 최대치에 달했던 2016년 1월 주가가 사상 최고가인 8만9600원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주가는 코로나19 이후 한산해진 극장가 만큼이나 서늘한 수준입니다.
최근 이 종목에 20년 가까이 투자했다는 국립대 한 교수를 만났습니다. CJ CGV가 2004년 주식시장에 상장했으니 거의 이 종목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셈입니다. 이 교수는 남편과의 주말 극장 데이트가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합니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여고괴담'. 이후 '장화, 홍련' '클래식'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등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CGV와 함께 고스란히 즐겼던 그는 2006년 처음으로 CGV 주식을 매입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학생들한테 이 얘기하면 객장에서 주식 사고파는 걸 상상하지만 그때도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있었다"며 "2004년 CGV가 증시에 상장할 때 아주 세련된 기업으로 보이기도 했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던 나에게는 트렌디하면서도 친근한 기업이었기 때문에 오로지 이 주식을 사기위해 HTS도 배우고 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습니다.
처음 그에게 CGV 주식 투자는 단기간에 돈을 벌기 위한 재테크용 목적이라기보단 매달 은행에 꼬박꼬박 돈을 넣던 예금처럼, 영화 보고 남는 돈이 있으면 생각날 때마다 사모으는 그런 상품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요즘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 리포트도 보고 유튜브 주식방송도 보면서 투자를 하지만 나는 이 회사의 전망보다는 매주 주말 극장에 가득찬 관람객들을 보고 평일에는 또 이번 주말 무슨 영화를 볼까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밀접해졌던 것 같다"고 떠올렸습니다.
그러던 2014년 CJ CGV 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그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전량 팔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집을 마련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해 가지고 있던 예금, 적금, 주식을 다 현금화시켜 사용했다"며 "대단히 높은 수익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모았기 때문에 '세월이 가져다 준 든든함 정도의 수익률'이 있었다"고 표현했습니다.
CJ CGV 주식의 하이라이트는 언제로 기억할까요. 이 교수는 "결혼 때문에 주식을 다 팔고 아예 관심을 끊고 생활하다가 어느 날 기사에서 CGV 주식이 잘 나간다는 뉴스를 봤다"며 "그때가 할리우드 대작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라고 기억했습니다. 2015~2016년은 해외에선 '어벤저스' '캡틴 아메리카' '라라랜드' '제이슨 본'부터 국내에선 '베테랑' '강남 1970' '곡성' '밀정' '부산행' '아가씨' 등이 개봉했던 극장가의 전성기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극장 관람객은 2013년 2억명을 처음 돌파한 뒤 2016년까지 5년간 2억명 수준을 유지하는 등 극장가 전성기 시절을 누렸습니다. CJ CGV 주가도 2013년 초 1만8000원대에서 2016년 초 8만9000원선까지 5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이 교수는 "이 시기부터 CGV 주식을 다시 사모으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닥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주식 투자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고 떠올렸습니다. 그는 "그 이전부터 극장을 찾는 총 관람객이 정점을 찍고 꺾이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에서 대형 사업자들이 뜨기 시작하면서 주가는 이미 많이 내려왔던 상태였지만, 유일하게 사모으는 주식이 코로나의 최대 피해 주가 될줄은 몰랐다"며 "학생들과 온라인 수업을 하고, 매일 기사에서 비대면 수혜주가 뜬다는 뉴스를 보면서 주식투자가 '로망'에서 '현실'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화 산업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CJ CGV 주식을 팔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최근 CGV 수익률이 찍혀 있는 계좌를 보면 남편과 '조상님 중에서 어디 안좋은데 누워계시는 분 있는 것 아니냐'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주변에 보면 OTT를 많이 보는 사람이 극장에도 자주 가는 등 극장 산업이 마냥 비극적인 건 아닌 것 같다"며 "최근 '듄2' 같은 영화를 보면 꼭 극장에서 소비하고 싶은 콘텐츠들이 있는 만큼 영화관의 역할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3년 내내 적자였던 CJ CGV의 실적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CGV는 지난해 매출 1조5458억원, 영업이익 491억원을 기록하며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2019년 대비 매출의 80%까지 회복한 수준입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도 호실적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김회재 대신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해 리드타임(제작 완료 후 개봉까지 소요된 기간)이 길어진 구작들이 소진된 점과 프로모션 진행으로 티켓 가격 부담 완화, 글로벌 OTT 가격 인상에 따른 반사 이익 등으로 주변 환경이 우호적"이라며 "올해 CGV의 전국 관객수는 전년 대비 15% 증가한 1억4300만명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올해 CGV 실적은 영업이익은 2분기부터 CJON 반영 시 역대 최고 영업이익인 1조400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라며 "이는 2019년의 112% 수준으로 연간 리스이자비용인 약 800억원을 반영해도 당기순이익은 8년 만에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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