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와 유통사 간 ‘제·판(제조·판매) 전쟁’이 시작된 건 이마트 등 대형마트가 본격 등장한 1990년대부터다. 지금은 ‘반(反)쿠팡 동맹’으로 대형마트와 손을 잡은 CJ도 2000년대 초에는 판매 가격을 놓고 까르푸 등과 한판 전쟁을 벌였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유통업체와 제값을 받으려고 하는 제조업체의 가격 주도권 전쟁이 상대를 바꿔가며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유통기업들의 물류 혁명과 e커머스의 등장으로 이제 승부의 추는 확실하게 유통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 월마트는 한때 ‘앨런 그린스펀보다 더 뛰어난 인플레 억제 기업’으로 불렸다. 납품 기업을 휘어잡은 월마트의 저가 판매 능력이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인 그린스펀보다 더 강력한 물가 억제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역시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제품을 싸게 사는 건 무엇보다 좋은 일이다. 제조사와 유통사가 전쟁을 벌이든, 유통업체 간 최저가 싸움을 하든 가격이 내린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번 CJ-알리 동맹은 어쩐지 뒷맛이 쓰다.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선 중국 e커머스의 기세가 무서울 정도로 거침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하고 국내 유통업계를 평정한 쿠팡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러다가 유통산업뿐만 아니라 토종 제조업까지 범람하는 중국산 상품에 초토화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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