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한국의 고속성장과 문화 지체

입력 2024-03-08 18:12   수정 2024-03-09 00:52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축성장한 나라다. 기술적 근대화(산업 발전)와 사회적 근대화(민주화) 둘 다 성공한 국가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60년대 80달러대에서 2023년 3만3745달러로 반세기 만에 400배 이상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도 이렇게 급격한 성장과 변화를 겪은 나라는 한국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대견해하며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한국이 고속 성장한 동인은 무엇일까. 필자가 우연히 본, 정부 산하 한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에서는 세 가지를 주요 원인으로 들었다. 첫째는 국민의 대단한 교육열, 둘째는 국민의 엄청난 근면성이었다. 마지막은 정부 주도의 강력한 리더십이었다. 한마디로 우리 선배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정책 아래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 논문 말미에는 경제 성장이라는 성취 이면에 발생한 부정적 사회현상도 언급됐다. 물리적 성장인 기술적 근대화에 몰두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사회적 근대화와 긴 틈이 벌어지며 문화 지체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자본 만능의 위계 사회, 인본의 품격을 상실한 사회는 갈등을 증폭시킨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상실된 졸부 국가란 것이다. 이기주의, 이념 갈등, 계층 갈등 같은 부정적인 사회 현상들도 이런 사회적 배경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힘은 위대하다.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서 소프트파워의 순기능을 경험해 왔다. 유네스코는 오래전부터 빈국에 문화예술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자기 결정성을 갖게 되고,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한마디로 한 번의 배불림이 아니라 미래의 건강한 삶을 제시해 주겠다는 정책이다.

이제 예술은 의식주처럼 우리 생활의 기본적인 공공재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시립미술관에서 구립미술관, 심지어는 동네 미술관까지 생기고 있다. 어린이집, 놀이터, 노인정과 같이 동네 곳곳에 조그만 공립 미술 공간들이 침투하며 우리의 삶을 바꾸고 있다.

필자는 동시대 한국의 문화 지체가 야기하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문화예술의 소프트파워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이해와 공감 부족의 갈등 사회를 문화예술로 한 번 보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의 사회적 근대화와 기술적 근대화의 긴 틈을 아름답고 풍요로운 문화예술로 꽉 채워 보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경제 강국에서 문화 강국으로 나아가고 있으므로, 필자는 이것이 아주 불가능한 소망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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