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과천시의 주민소환 투표 때 취재하러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과천시 부림동주민센터 투표소를 찾았다가 너무나 썰렁한 현장에 당황했다. 시민 의견을 듣고 싶어 나오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붙였는데 알고 보니 다른 회사 취재기자여서 둘이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하는데 실제 투표율은 20%대에 그쳤다. 투표함은 개봉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2011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주민소환 투표 전에 철회됐다. 과천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청구 취지 및 이유 중 일부분에 대해 개선 대책을 제시하고 실행하기로 해서 당사자가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시민은 지자체장에게 자기 목소리를 알리려고 주민소환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헛일로 끝난 주민소환 소식에 과천 시민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벌써 세 번째니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시는 사정이 다르다. 과천시는 투표를 준비하느라 3억4000여만원을 선관위에 지출해야 했다. 공무원들은 차출돼 선거관리 사무를 맡았다.
과천시에서만 세 번이나 주민소환 소동이 벌어진 이유는 청구할 수 있는 최소 서명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과천시 유권자(6만5925명)의 15%인 9889명의 서명만 받으면 된다. 대단지 아파트 한두 개 주민이 마음만 먹으면 지자체장 사퇴를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천시에 3억4000만원은 적잖은 돈이다. 유권자 한 명당 5200원꼴이다. 이 돈으로 노인 일자리를 더 만들거나 저출생 관련 예산으로 쓸 수도 있었다. 선관위가 일부 비용을 돌려준다고 해도 시장과 공무원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보상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주민소환투표제의 문턱을 조정하려 하는 것도 우려스럽다. 행안부는 2020년 투표의 개표 요건과 확정 요건을 더욱 완화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했으나 다른 법과의 조정 문제로 계류 중이다. 행안부는 오는 5월 임시국회서 처리가 안 되면 차기 국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과천시에서와 같이 이 제도가 일부 극단적 시민의 민원 통로로 악용될 소지도 적지 않다. 자칫하면 인구 감소를 겪는 기초지자체장이 제2, 제3의 과천시가 돼 수시로 사퇴 요구에 시달릴 수 있어서다. 세심한 제도 설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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