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비싼 美에 공장 지어야 하나"…'삼중고' 겪는 철강업계

입력 2024-03-10 08:25   수정 2024-03-10 08:38


현대제철은 태스크포스(TF)로 운영했던 그린스틸TF를 최근 '실'로 격상하고 ‘탈(脫)탄소’ 전략을 상시 논의키로 했다. 이 부서에서 다룬 중요 안건 중 하나가 미국 내 전기로 공장 설립이었다.

원료로 철스크랩(고철)을 사용하는 전기로는 탄소배출량이 고로의 20%밖에 되지 않아 탄소세 부담이 적다. 또 미국이 외국산 철강 제품에 부과하는 높은 관세를 피할 수 있어 미국 시장 직접 공략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공략하려면 현지 기업 인수나 공장 설립 밖에 없단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배터리·전기차처럼 현지에 생산기지

10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 산업에서도 전기차와 배터리처럼 수요처 현지에 생산 기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논의가 늘고 있다. 높아진 무역 장벽과 탄소 감축 압박, 중국의 저가 공세 등 ‘삼중고’를 한 번에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다.

한국 철강 회사 중 미국에 고로나 전기로를 세운 곳은 아직없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철강 기업은 낮은 인건비 등을 무기로 성장해왔는데, 미국에선 이런 ‘성공 공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인건비와 땅값이 훨씬 비싼 미국에 공장을 지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높아진 관세 장벽 때문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인 2018년 무역 확장법 232조를 발동, 철강 수입이 자국 경제 안보에 영향을 준다며 철강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미국 정부와 협상해 얻어낸 쿼터(할당량)만큼만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 쿼터는 직전 3년 평균 수출 물량의 70%다. 판매량을 늘리려면 25% 관세를 내고 수출하거나 현지 공장을 짓는 방법밖에 없다.

탄소세 부과도 전기로 공장 검토의 한 고려 요인이다. 미국 정부는 올해부터 철강 제품 등 12개 수입품에 대해 온실가스 배출 1t당 55달러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아직 세부안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철강 기업들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전 산업 중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한국 철강 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1.02억t이다. 국가 전체 배출량의 15%다. 기업 중에선 포스코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7018만t의 탄소를 배출했고, 현대제철은 2850만t으로 2위를 차지했다.

EU 역시 한국 등 탄소 규제가 약한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상품에 2026년부터 높은 관세를 적용할 예정이다. EU는 미국 생산 제품에 대해선 탄소세를 부과하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은 이미 현지 기업 인수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도 미국 진출에 영향을 준다. 중국 철강 기업들은 자국 내 수요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싼값에 물량을 해외로 넘기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철강 완제품 수출은 9026만4000t으로 전년보다 36.2% 증가했다. 이중 상당 물량이 한국에 들어왔다. 가격도 한국산에 비해 10% 이상 저렴하다.

수입산 열연 강판 가격은 한국에서 지난 1년 동안 70만원대 후반에서 90만원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산은 80만원대 후반~100만원대 초반이다. 자동차, 선박 등 고급 제품이 아니라면 한국 기업들도 당연히 싼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 시장은 이런 저가 공세가 통하지 않는다. 중국 역시 미국에선 무역 확장법 232조에 따라 높은 수출 물량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시 철강 등 중국 제품에 60% 이상의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는 등 미국 내 여론도 좋지 않다.

한국 기업과 비슷한 고민에 직면한 일본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세계 4위 철강사 일본제철이 미국의 3대 철강사 US스틸을 작년 12월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공장 설립보다 시간이 덜 드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투자 금액만 141억달러(약 18조3000억원)다. 미 철강 회사 클리블랜드-클리프스가 제시한 72억달러보다 두 배를 더줬다.

일본제철은 “미국은 선진국 최대 시장으로 고급 강재 수요를 기대할 수 있다”며 인수 배경을 설명했다.

전기로 확장을 주저하게 만드는 기술적 문제도 차츰 해결되고 있다. 미국 전기로 공장 설립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전기로만으로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고급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고로와 전기로의 쇳물을 섞어서 고급 제품을 만드는 혼합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경우 지난해 9월 전기로를 통해 세계 최초로 1GPa급 고급 판재 시험 생산, 부품 제작에 성공하기도 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내 전기로 공장 설립은 아이디어 검토 차원에서 나온 것으로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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