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다음달부터 주요 자원에 공급망 위기가 닥칠 경우 미국·일본·호주 등 14개 나라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2021년 겪었던 중국발 '요소수 대란'이 다시 발생하더라도 공급망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미국 주도로 2022년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 협정 덕분이다.
13일 외교가에 따르면 IPEF 공급망 협정(필라2)이 다음달 한국에서도 발효될 예정이다. 지난 6일 우리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IPEF 공급망 협정 비준서를 심의·의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결 뒤 비준서를 IPEF에 기탁하면 30일 뒤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앞서 지난달 미국·일본·인도·싱가포르·피지 등 5개국에선 이미 발효됐다.
우리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에 따르면 IPEF는 전통적인 무역협정(FTA)과는 달리 시장개방(관세 인하, 철폐) 이슈를 포함하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글로벌 이슈에 대한 규범과 협력을 통해 공정하고 열린 경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PEF는 총 4개의 필라(부문)로 구성돼 있다. 필라1(무역)·필라2(공급망)·필라3(청정경제)·필라4(공정경제) 등이다. 필라1에 불참한 인도를 제외한 나머지 13개 나라는 전 부문에 참여 중이다. 이들 14개국은 전 세계 인구의 약 32%, GDP의 40%를 차지한다. 한국과의 교역 규모는 2022년 기준 5792억달러로 우리의 총 교역 규모 대비 39.6% 수준이다.
IPEF는 출범 이후 2022년 9월 장관회의를 계기로 협상이 시작됐고, 지난해 11월까지 7차례의 공식협상과 2차례의 정상회의, 3차례의 장관회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필라 2~4의 타결을 이끌어냈다. 이 중 가장 진행 상황이 빠른 게 공급망 협정을 담고 있는 필라2다. 필라2에 따르면 각국은 공급망위원회를 설립해 공급망 복원력을 증진하기 위한 평시 협력을 도모하고, 공급망 위기가 발생하면 '공급망 위기대응 네트워크'를 상설해 공동으로 대응한다. 위기 발생 나라의 요청 후 15일 안에 서로가 화합해 대체 공급처를 파악하는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숙련 노동자를 육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지난해 말 한국경제인협회가 연 토론회에서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하룻밤 사이 줄일 수 없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결국 중국만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IPEF가 이런 문제 대응을 위한 첫 단계인 대화와 토론을 이끌 수 있다"며 "요소수 부족 사태를 겪은 한국은 안정적인 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IPEF로 얻을 수 있는 경제안보적 편익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에 대한 견제도 IPEF의 핵심 역할이다. 사실 애초 이 협정은 동맹국간 경제 협력보다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에 방점을 찍고 출범시켰다는 분석이 많았다. 중국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주도하는 데 따른 대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면서도 국력이 강한 한국·일본·인도 등이 모두 IPEF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IPEF를 두고 "경제판 NATO"라며 비판했다.
향후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과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이 IPEF에 가입하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디커플링과 망 단절의 부정적인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유지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지혁 한국수출입은행 책임연구원은 "IPEF 가입은 한국에게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인 상황으로 한-미, 한-중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기존의 통상질서에서 한국은 선진국 주도로 제정된 규칙을 수용하는 ‘룰테이커(rule-taker)’였으나, 신통상질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한국에게 유리한 국제적 기준과 규범을 수립할 수 있는 ‘룰세터(rule-setter)’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외교부도 올해 업무 추진 계획에 경제·안보 융합외교의 일환으로 IPEF 공급망 위기 대응 네트워크 가동을 통한 국제연대 인프라 구축을 주요 과제로 포함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