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사람 중심 인사체계도 변화의 시기에 접어든 듯하다. 회사 내에서 일의 구분이 세분화되고, 요구되는 직무 전문성도 심화됨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공채를 폐지하고, 직무 기반의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이 최근 들어 공채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글로벌 마켓에서 통용 가능한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편이다.
기업이 직무중심의 인사체계를 도입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단계가 있다. 바로 직무평가다. 직무평가는 우리 조직 또는 시장 내에서 특정 직무의 가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사람 중심의 인사체계를 오랜 기간 운영해온 한국 기업의 경우, 직무가치에 대한 내부의 공감대가 미흡한 경우가 많아 초기부터 체계적인 직무평가를 통해 명확한 인사기준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직무평가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방법론이 아니어서 이를 처음 접하는 회사의 경영진과 구성원, 인사 실무자들이 막연한 기대 또는 오해를 갖는 경우도 있다.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희망하는 한국 기업들이 원활하게 직무평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직무평가를 처음 도입하는 기업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오해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해1. 직무평가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
직무평가에는 다양한 방법론이 있으며,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절대적인 정답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직무평가 방법론을 살펴보면, 직무의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시장가치법, 조직 내 직무의 순위를 매겨보는 상대서열법, 표준적인 직무평가 요소를 기준으로 점수를 산정하는 표준점수법 등이 있다. 각각의 방법론은 장단점이 뚜렷하므로 산업 특성과 활용 목적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방법론은 채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직무평가의 목적이 시장가치에 부합하는 직무급 도입에 있다면, 시장가치법에 기반한 보상 데이터 벤치마킹 및 직무 매칭을 통해서 진행해볼 수 있다. 시장 내에서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산업군일수록 시장가치법에 기반한 직무평가 방법론의 적합도가 높을 것이다. 직무가치에 기반하여 직급/승진/보상 등 인사체계 전반을 새롭게 구축하고 싶다면 상대서열법이나 표준점수법을 활용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이렇듯 직무평가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각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론을 선택하여 활용하는 것이 좋다.
#오해2. 직무평가에는 정량적이고 과학적인 산출 로직이 있다.
기업에서 직무평가를 진행하다 보면, 직무평가 진행과정과 결과 산출에 있어서 정량적이고 과학적인 결과 도출을 종종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직무평가를 처음 도입하는 회사의 경우, 직무평가 결과의 수용성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여기기 때문에 직무평가 방법론의 완전무결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무평가는 정성적인 판단과 합의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과업이다. 직무평가 방법론은 직무가치를 판단하는 관점과 기준을 제시해주지만, 세부적인 평가척도를 부여할 때는 조직 내 직무 전문가, 경영진의 합의에 따른 판단이 필수적이다.
직무평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 직무평가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서 상대가치를 구분하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다. 어떠한 직무에 얼마만큼의 가점 또는 감점을 부여하는지, 가치 차등 기조를 크게 가져갈 것인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타사 평가사례도 각 사의 평가기조와 직무 구성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참고자료는 되겠지만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 구성원 및 전문가에 의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해3. 직무평가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직무 내용이 바뀌거나 업계 상황, 전략 방향 등이 변화함에 따라 직무평가 결과 또한 변화한다. 직무평가에는 다양한 평가요소가 고려되며, 그 중에는 외부 환경과 전략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요소 또한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머서의 직무평가 도구인 인 IPE(International Position Evaluation)의 평가요소인 Contribution(공헌도), Breadth(지리적 범위)와 같은 요소들은 산업 환경에 따른 매출, 이익 변화나 직무의 업무 관할 범위가 변경될 경우, 평가 점수가 바뀌게 된다.
따라서, 직무평가 결과가 변하지 않는다거나, 오랜 기간동안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직무의 내용이나, 업무 수행/성과 등이 안정화돼있으면 직무평가 결과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도 하지만, 회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직무의 가치 변화가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머서에서는 직무평가를 최소 1년 주기로,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안내하며, 새로운 직무가 생겨나거나, 조직/전략 관점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상시적으로 직무평가를 실시하여 최신화할 것을 권장한다.
#오해4. 직무평가는 외부 전문가에 의해 수행돼야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직무평가를 위해 컨설팅 회사와 같은 전문기관에 직무평가를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직무평가 전문 컨설턴트들은 컨설팅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직무평가 방법론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고, 글로벌 직무평가 데이터베이스 등을 활용하여 검증할 수 있는 등 직무평가에 관하여 분명한 강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외부 전문가들은 회사가 속한 산업이나 회사 내 직무 특성에 대해 내부의 직무 전문가만큼 알지 못한다. 직무평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직무평가 방법론 자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평가대상이 되는 직무 자체에 대한 이해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직무평가를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에 의뢰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내부 직무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직무평가를 처음 진행하다 보면 앞서 소개한 오해들을 조직 내에서 마주치는 순간이 많이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당황하지 말고, 이해관계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진행해보는 것이 좋다. 직무평가는 조직 내 주요 직무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살펴보고, 구성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단순히 직무평가를 통해 도출한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고려되는 조직의 판단 기준, 상이한 가치 판단에 대한 조율 등이 보다 더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충실하게 거쳐서 도출한 결과여야만 인사체계의 안정적인 운영기준으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황수용 MERCER Korea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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