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끝에 다올투자證 거머쥔 이병철 회장의 네트워크 활용법

입력 2024-03-13 09:23   수정 2024-03-15 15:47

이 기사는 03월 13일 09:2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병철 다올투자증권 회장은 2016년 KTB투자증권(현 다올투자증권)에 전문경영인으로 합류했다. 당시 권성문 KTB투자증권 회장의 러브콜을 받고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 회장은 전문경영인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장내에서 지분을 사들이고, 중국 자본까지 끌어들인 끝에 2018년 권 전 회장을 밀어내고 다올투자증권의 경영권을 꿰찼다.

임태순 케이프투자증권 대표도 이 회장과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 2016년 케이프인베스트먼트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돼 LIG투자증권(현 케이프투자증권)을 인수를 주도한 임 대표는 2020년 케이프투자증권의 모회사인 코스닥 상장사 케이프의 경영권을 거머쥐었다.

경영권 분쟁 끝에 오너 자리를 꿰차는 건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신 SK증권 대표도 SK증권이 새 주인을 찾는 과정에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이 다올투자증권 경영권을 놓고 2대 주주와 분쟁을 겪자 케이프투자증권과 SK증권이 백기사로 깜짝 등장한 배경이다.
캐이프와 다올의 동행 모드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케이프투자증권이 이 회장의 우군으로 나선 건 임 대표와 이 회장의 깊은 인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경영인이었던 임 대표가 오너가 되는 과정에 이 회장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임 대표가 2020년 템퍼스인베스트먼트를 앞세워 케이프 경영권을 가져올 때 다올투자증권은 템퍼스인베스트먼트가 발행한 전환사채(CB)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인수 자금을 댔다. 당시 다올투자증권과 리딩투자증권, 김종호 전 케이프 회장이 함께 템퍼스인베스트먼트에 325억원을 투입했다. 경영권 확보를 위한 자금을 지원해준 것이다. 템퍼스인베스트먼트는 케이프 최대주주(28.93%)다.

증권업계에서는 다올투자증권의 CB 투자가 없었다면 템퍼스인베스트먼트가 케이프투자증권을 지배하는 케이프 경영권을 얻기 힘들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당 CB는 템퍼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케이프 주식이 담보로 잡혀있다. 다올투자증권이 조기상환을 청구하고, 임 대표가 이를 받아주지 못하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임 대표도 지난해 경영권 분쟁에 직면한 이 회장의 조력자로 가장 먼저 나섰다.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가 지난해 5월 초 다올투자증권 2대 주주에 오르자 케이프투자증권은 6월부터 곧장 장내에서 다올투자증권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하기 시작했다. 올해 정기주주총회 주주명부 폐쇄를 앞둔 지난해 12월엔 케이프투자증권을 창구로 한 다올투자증권 순매수량이 115만2707주에 달하기도 했다. 주주명부가 폐쇄된 뒤로는 케이프투자증권 창구를 통한 다올투자증권 주식 매입이 뚝 끊겼다.
SK증권도 지원군 나서
SK증권에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김신 대표가 이 회장과 밀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SK증권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J&W파트너스의 장욱제 대표와 친밀한 관계다. 둘은 과거 미래에셋증권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다. 김 대표는 J&W파트너스가 SK증권을 인수할 당시 중간에서 다리를 놓고, J&W파트너스가 조성한 펀드에도 개인 자금을 출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종의 매니지먼트바이아웃(MBO)로 김 대표 또한 전문경영인에서 오너 반열에 올랐다.

최대주주의 지분이 많지 않아 지배력이 약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SK증권과 다올투자증권은 과거부터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서로가 서로의 지분을 보유하며 힘을 보태는 방식이다. 다올투자증권은 2021년부터 SK증권 지분 2.4%(1131만주)를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다가 지난해 초 모두 정리했다.

이 회장이 어려움에 처했을 땐 김 대표가 이끄는 SK증권도 케이프투자증권과 마찬가지로 곧장 지원군으로 등장했다. SK증권 창구를 통한 다올투자증권 주식 순매수량도 케이프투자증권이 다올투자증권 주식 매입을 시작한 지난해 6월부터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SK증권의 다올투자증권 매입도 주주명부가 폐쇄되는 지난해 말 끝났다.

지난해 말 기준 SK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은 각각 다올투자증권 주식 285만주를 보유 중이다. 정확히 동일한 수량을 갖고 있다. 비슷한 시점에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똑같은 수량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SK증권과 케이프투자증권이 주식 매입 전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원미디어는 종교 인연?
케이프투자증권과 SK증권 외에 중소기업 중원미디어도 이 회장의 숨겨진 백기사로 꼽힌다. 중원미디어는 지난해 말 KB자산운용이 보유한 다올투자증권 지분을 블록딜로 매각할 때 케이프투자증권과 함께 인수에 참여해 지분을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다올투자증권 지분 4.8%(294만6300주)를 보유한 4대주주다.

중원미디어는 올해 81세인 송재건 중원산업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이다. 경주온천관광호텔 등을 소유하고 있다. 관광호텔이 주요 사업이지만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큰 타격을 입었다. 경주온천관광호텔은 아직도 휴업 중이다. 2022년엔 영업을 하지 못해 매출이 없었다. 27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만 냈다. 2022년 말 기준 단기금융상품과 현금 및 현금성자산으로 약 600억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자금으로 다올투자증권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보인다.

송 회장과 이 회장은 종교를 가교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조계종 직영사찰인 봉은사를 자주 찾는다. 다올투자증권 사무실엔 이 회장이 봉은사에서 받아온 입춘첩(사진)이 곳곳에 붙어 있다. 송 회장은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을 지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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