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전문가 자문기구인 민간자문위원회는 두 가지 안을 제안했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50%로 높이는 안이 첫 번째다. 이어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은 15%로 인상하는 내용이 2안으로 제시됐다. 첫 번째 안은 야당과 노동계가 강력하게 지지했다. 재정 안정에 무게를 싣는 전문가들은 2안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12일 공론화위원회는 1안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2안은 보험료율 인상 수준을 12%로 3%포인트 떨어뜨렸다. 어떤 안을 택하든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안정은 기대하기 힘들다. ‘공론화위를 통한 국민연금 개혁안 도출’이라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달 남짓 이뤄진 공론화위 논의에서 참가자들은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15%로 인상하는 안에 처음부터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제인 단체와 지역가입자 대표들이 나서 “15%로의 보험료율 인상은 과도하며 기업과 가계에 큰 부담이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보험료율 인상폭은 15%에서 12%로 조정됐다.
반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은 13%로 4%포인트만 인상하는 안은 노동계 참여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채택됐다.
의제숙의단 내에서는 재정 안정에 그나마 더 강점이 있는 2안이 더 많은 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에 따르면 1안이 15표, 2안은 18표를 받았다. 하지만 공론화위는 논의 결과를 발표하며 적은 표를 얻은 1안을 앞으로 내세웠다. 공론화위 활동 전반에 야당과 노동계의 입김이 더 세게 실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우선 1안은 연금 고갈 시점을 6년 늦출 수 있지만, 일단 고갈 이후에는 현행제도를 유지할 때보다 미래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지는 문제가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재정 타격이 상대적으로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데 따른 결과다. 1안을 시행할 경우 기금이 소진되는 2061년 당해의 연간 기금 적자는 176조원에 달한다. 현행 제도를 유지할 때 기금 소진 시점의 연간 적자인 47조원보다 3배 이상 많다. 소득대체율이 50%에 이르는 만큼 기금 소진 이후 가입자가 납부해야 할 보험료율도 소득 대비 35.6%로 대폭 높아진다.
2안도 재정 안정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금 고갈 시점이 2062년으로 현행보다 7년 늦춰질 뿐이다. 당해 연간 적자는 96조원으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것보다 2배 정도 많다. 기금 소진 이후 납부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보험료율은 31.2%로 현행(26.1%)보다 높다. 연금 전문가는 “높은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6~7년 연금 고갈 시점을 미루는 것은 연금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론화위는 다음달 시민대표단 500명의 투표로 두 가지 안 중 최종안을 결정한다. 사안의 중대성과 복잡성을 감안할 때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민간자문위의 한 위원은 “처음부터 윤석열 정부가 주도권을 가지고 개혁을 이끌었어야 했다”며 “공론화 방식을 도입하는 바람에 연금개혁 전망이 어두워졌다”고 말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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