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자금 수백억 날렸다…은퇴자 울린 나쁜 기획부동산

입력 2024-03-13 12:00   수정 2024-03-13 13:40


기획부동산 법인 A사는 개발 가능성이 없는 임야를 경매를 통해 낮은 가격으로 취득했다. 이어 텔레마케터를 통해 개발 호재가 있고 소액 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들을 현혹해 해당 임야 지분을 높은 가격에 팔았다. 연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거나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이들의 타깃이었다.

생계비나 노후 자금을 활용해 모은 돈으로 토지를 취득한 투자자들은 원금을 모두 잃었다. 이들의 총 피해 규모는 수백억 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A사는 양도차익을 줄이기 위해 다른 지역 거주자나 다른 근무처 상시근로자에게 사업소득을 지급한 것처럼 위장해 세금을 탈루했다.

국세청은 서민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며 탈세 행위를 저지르는 부동산 거래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96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13일 발표했다. 안덕수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은퇴 계층의 노후 자금을 노리고 소액 투자를 유도하는 기획부동산 사기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주거 낙후지역 재개발을 방해하는 알박기 투기 후 관련 세금을 탈루하는 행태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부동산이란 개발이 어려운 임야 등을 낮은 가격으로 매수한 후 과장·허위 광고를 통해 수십에서 수백 명에게 지분으로 판매하는 등 투기를 일삼는 법인을 뜻한다.

이번 세무조사 유형은 △서민에게 피해를 주고 탈세하는 기획부동산 (23명) △개발 지역 알박기로 폭리를 취한 후 양도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자 (23명) △양도차익 무신고 및 취득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무허가 건물 투기 혐의자 (32명) △부실 법인·무자력자 끼워넣기를 통한 악의적 탈루 혐의자 (18명) 등이다.

우선 국세청은 개발 가능성이 없는 땅을 지분으로 쪼개 팔면서 텔레마케터 등을 통해 서민들에게 투자를 유도해 큰 피해를 입히는 기획부동산 혐의자 23명 대상으로 고강도 세무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들은 가공경비를 계상하거나 폐업하는 등의 수법으로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법인이 취득할 수 없는 농지를 개인 명의로 취득하고, 기획부동산 법인이 컨설팅비 등 수수료 명목으로 이익을 흡수하는 형태의 신종 기획부동산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주택·토지 등을 취득한 후 알박기를 통해 시행사로부터 명도비나 컨설팅비 등의 명목으로 대가를 지급받았음에도 양도소득을 신고하지 않은 탈루 혐의자도 23명이 확인됐다. 이들은 시행사가 개발 사업이 확정되기 전까지 높은 이자율의 브릿지론을 활용할 수밖에 없어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점을 악용해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고 폭리를 취했다. 브릿지론은 시행사 등이 제2금융권을 통해 단기(6∼12개월)에 높은 이자로 빌리는 자금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체가 지역 개발을 위해 토지매입 작업을 진행하자 양도인 B씨는 특수관계인인 사촌동생 C씨가 보유한 대지를 수천만 원의 낮은 가격에 매입했다. B씨는 알박기 수법으로 개발사업을 지연시켜 개발업체로부터 취득가액의 150배에 달하는 수십억 원의 양도대금을 용역비 명목으로 추가 지급받기로 했다. 그러면서 특수관계법인을 통해 고액 양도대금을 우회 수령하는 방법으로 양도소득세를 탈루했다.

재개발 지역 내 무허가 건물을 투기하면서 등기가 이뤄지지 않는 점을 악용해 양도차익을 신고하지 않거나 취득 자금이 불분명한 혐의자도 32명 확인됐다. 지금까지 무허가 건물은 등기가 되지 않아 거래 현황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토교통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 및 법원 등 관계기관 간 연계 분석을 통해 무허가 주택 거래 현황과 신고 행태를 파악했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부동산 거래 과정에 소득이 없는 결손법인 등 부실 법인이나 자금이 없는 무자력자를 끼워 넣어 낮은 가격에 양도한 후 단기간에 실제 양수자에게 높은 가격에 재양도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위장해 양도소득세를 악의적으로 회피한 혐의자 18명도 적발됐다.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특이 동향을 지속 관찰해 탈루 사실이 확인될 경우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등 엄정하게 대응할 예정이다. 특히 기획부동산은 확정 전 보전 압류 및 현금징수를 통해 조세채권을 조기에 확보하고 조세 포탈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검찰에 고발하는 등 강력하게 조치하기로 했다.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하고 있는 기획부동산은 금융 조사를 통해 실소유주를 끝까지 추적해 징수할 계획이다.

안덕수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서민 생활에 피해를 주고 주거 안정을 저해하는 부동산 탈세에 대해서는 유관기관과 신속히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협업해 검증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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