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까지 챙길 여유는 없네요. 스스로를 챙기기도 힘든 걸요."(30대 직장인 윤 모씨)
소비자들 사이에서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나 빼빼로 데이 등 ‘OO데이’를 챙기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업체들의 마케팅이 시들해진 점,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진 점이 원인이다.
14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학교 앞. 대학교 정문 반경 200m 내 편의점 일곱 곳이 몰려있는 이 곳 편의점 매대에는 이날까지 관련 행사 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해당 편의점 중 한 곳을 운영하는 점주는 "코로나 이전만 해도 일주일 전부터 화이트데이 상품 매출이 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서도 "구색을 갖추기 위해 올해도 준비하긴 했지만 아직 팔리지 않고 남아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화이트데이가 시들해진 건 수많은 '데이'들이 생겨나면서 소비자들은 싫증을 느낀 게 이유라는 분석이다. 대학생 박모 씨(25)는 "특정일을 기념한다는 의미보다 기업의 상술로 느껴져 굳이 챙기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소비자는 "지난해 화이트데이 때 1만5000원짜리 상품을 샀는데 상품 가격을 합쳐보니 1만원이 안됐다"며 "기념일 특수를 노려 과대포장으로 이윤을 남기려 하는 것 같아 올해는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부담스러운 가격도 문제다. 서울 서소문동에 위치한 한 편의점 매대에 진열된 화이트데이 상품은 최소 4000원부터 최대 2만1500원까지 가격이 책정됐다. 다른 프렌차이즈의 한 편의점 매대에 놓인 진열 상품은 35개 중 33개가 1만원 이상의 기획 상품이었다. 직장인 윤 모씨(31)는 “화이트 데이에 연인에게 주는 3만~4만원을 아껴 차라리 조금 더 좋은 식당에서 식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진행하는 마케팅 행사도 점차 축소돼 가는 분위기다. 편의점의 화이트데이 입간판이나 현수막이 줄었다. 이날 서울 서소문동 인근 편의점 열 곳을 둘러본 결과 화이트데이 매대를 따로 마련한 곳은 절반 가량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지난 2월 발렌타이데이 때 팔지못한 초콜릿 상품이 매대의 절반을 차지했다. 인근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팔려도 비교적 싼 사탕이나 오히려 2+2 행사를 하는 초콜릿 상품이 팔린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게 편의점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또 다른 편의점주는 "지난 발렌타인데이 때 상품이 재고로 그대로 남았다"며 "화이트데이에 대한 기대는 접고 이번에 발주한 물량을 오발주로 반송처리했다"고 했다.
편의점 뿐 아니라 일선 대형마트 체인들도 화이트데이와 관련한 매대 규모를 축소하고, 매대 위치도 조금 가장자리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한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발렌타인데이 등 기념일 설문조사 했지만, 최근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추세 때문에 올해는 별도의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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