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이듬해부터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시작되며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본격화했다. 한국을 포함해 중국과 많은 교역을 하면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따르는 여러 나라가 혼돈을 경험했다. 이후 조 바이든 정부가 가치와 신뢰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겠다고 했지만 반도체 칩과 과학법(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신뢰가 일부 훼손됐다.
여러 통상 및 외교 전문가들은 올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미국 대통령 선거를 꼽는다. 보통 여름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확정하던 대통령 후보가 이번에는 일찌감치 정해졌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라는 전현직 대통령 간 리턴매치로 결정됐다. 두 후보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박빙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근소하게 앞서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가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하고, 그의 임기 시절 정책을 복기하고 있다.
반도체법과 IRA의 경우 트럼프가 이기더라도 이미 제정된 법이라는 측면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하지만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중국 정책도 큰 변화가 예견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 특유의 위협과 타협 전략이 어느 강도로 얼마 동안 어떻게 이어질지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다. 동맹국이라고 하더라도 한국에 큰 폭의 무역 적자를 이유로 어떤 청구서를 내밀지 모른다. 대북 정책의 추진 방향도 가늠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 우리의 통상 정책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바이든의 재임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 당선에 맞춰 대응 전략을 준비할 것인가? 누가 당선되더라도 ‘미국 우선’ 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반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통상규범 그리고 산업 정책 등에 있어 공동 연대 움직임은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언제라도 자국 이익을 이유로 공동 연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처럼 서로 간에 강한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가 약속을 깰 수 있고, 그러므로 모든 구성원은 피해를 보기 전에 먼저 약속을 깰 만한 명분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앞서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와 ‘우리가 처한 상황은 어떠한가’를 파악해야 한다. 글로벌 통상에서 핵심 가치사슬을 선점하고, 신뢰 기반의 협력 네트워크 속에서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대외적으로 공급망 분화와 보호무역주의 나아가 자국 우선주의에 직면해 있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 모두 포기할 수 없는 수요시장이자 기술과 부품 소재 조달처다. 이런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변화와 중국의 움직임이 일종의 판을 흔드는 단기적인 꼼수라면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정수는 무엇일까? 아마도 근본적인 산업경쟁력 제고, 신뢰 기반의 강력한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 그리고 중장기적 시각에서의 산업인력 양성일 것이다. 반도체산업이라면 우수 인력 양성과 원천기술 개발은 물론 소재·부품·장비 및 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 등의 균형 있는 산업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핵심 광물 자원과 2차전지, 전기차로 이어지는 산업 분야에서는 위험을 분산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은 동맹국이고 중국은 적국인지, 미국과는 손잡고 중국과는 절연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면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깊은 고찰이 있어야 한다. 눈앞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해하다간 허겁지겁 대응 방안을 찾으려 하기 쉽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차분히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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