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경제정책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이기 위해 국가 통계자료를 조작한 혐의로 김수현·김상조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11명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통계를 조작해 주택가격이 안정된 것처럼 꾸미고,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소득불평등이 심화한 상황을 숨기려 했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방검찰청(검사장 박재억)은 14일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김수현 전 실장 등 11명을 기소했다. 장하성·이호승 전임 정책실장과 부동산원 원장 등 함께 수사대상에 올랐던 11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대전지검은 지난해 9월 이번 의혹을 제기한 감사원의 의뢰를 받아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에 따르면 김수현·김상조 전 실장과 김 전 장관 등 대통령비서실과 국토부 관계자 7명은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로 집값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주택 통계인 한국부동산원 산정 '주간 주택가격 변동률'(이하 변동률)을 125차례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4년 6개월 동안 한국부동산원으로 하여금 국토부가 집값 변동률 '확정치'(7일간 조사 후 다음 날 공표)를 공표하기 전 '주중치'(3일간 조사 후 보고)와 '속보치'(7일간 조사 즉시 보고)를 매주 3차례 대통령비서실에 미리 보고하게 했다.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전에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통계법 위반이다.
이들은 통계 수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국부동산원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2021년 8월까지 상시적으로 서울·인천·경기 지역 주택 매매·전셋값 변동률을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수현 전 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부 1차관은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부동산 대책 효과를 변동률 산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하고,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대책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야 한다고 국토부 직원들에게 거듭 지시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로 인해 국토부 실장 등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질책해 변동률을 낮추게 했다고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부동산원 임직원들은 사전 보고가 부당하다며 12차례에 걸쳐 중단을 요청했으나 김상조 전 실장은 "사전 보고를 폐지하면 부동산원 예산이 없어질 텐데, 괜찮겠냐"고 압박하며 요청을 묵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17 대책 등 각종 부동산 대책 시행 전후와 2019년 대통령 취임 2주년, 2020년 총선 무렵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조작이 집중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2017년 11월에서 2021년 7월까지 서울 지역 아파트의 부동산원 주택가격 상승률 통계는 12%에 그쳤지만, 실거래가 상승률은 81%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됐다. 이전 정부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KB국민은행 변동률과도 최대 30%포인트 차이가 났다.
김상조 전 실장은 고용 통계를 왜곡한 혐의도 있다. 그는 2019년 10월 통계청을 압박해 발표자료 초안에 있던 ‘2018년보다 비정규직이 약 86만명 급증했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새로운 통계조사 방식 때문에 전년과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도록 했다. 조작에 가담한 황덕순 전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 이준협 전 대통령비서실 일자리기획비서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도 함께 기소됐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설계한 홍장표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은 소득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하위 20% 가구 대비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 배율인 ‘소득 5분위 배율’이 2018년 1분기 역대 최고수준인 5.95로 나타나자, 통계청 직원들에게 불법으로 개인정보가 포함된 통계 기초자료를 제공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이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인상 효과로 근로소득 불평등이 개선됐다’고 임의로 해석해 홍보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