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잘돼도 문제네…귀해진 김, '金값' 됐다 [하헌형의 드라이브스루]

입력 2024-03-15 18:34   수정 2024-03-25 17:00


조미김을 가공하는 A사의 원초(물김) 구매 담당 부서에 최근 비상이 걸렸다. 조미김 업체들은 통상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치에 해당하는 원초를 전국 산지에서 사들인다. 하지만 원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산지 가격이 1년 새 50%가량 치솟으면서 A사는 아직 애초 목표치의 절반밖에 수매하지 못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수매 끝물인 3월 말로 갈수록 원초 가격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요즘은 눈뜨면 또 올라 있어 당혹스럽다”고 했다.


김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다. 15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물김을 1차 가공한 마른김의 지난달 도매가격은 속(1속은 100장)당 7400원으로, 전년 동월(5329원) 대비 38.9% 급등했다. 작년 1월 4000원대 후반이던 마른김 도매가는 9월 6000원을 넘어서더니 올 2월 7000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로 올랐다.
◆작년 김 수출량, 국내 소비량 웃돌아
김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일차적으로 K푸드 열풍 등에 따른 수출 물량 증가로 국내 공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김 수출액은 7억9100만달러(약 1조500억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김 수출액은 2010년 처음으로 1억달러를 넘은 뒤 13년 새 일곱 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기간 수출 국가도 49개국에서 124개국으로 늘었다. 미국(작년 1억6900만달러)이 최대 수출국이고, 일본(1억4400만달러), 중국(9700만달러), 태국(6600만달러) 등에서도 많이 팔린다. 김을 ‘블랙 페이퍼(검은 종이)’로 부르며 먹지 않던 미국 사람들도 요즘은 칼로리가 낮고 건강 에 좋다는 이유로 김 스낵과 조미김을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작년 한 해 전체 김 수출량은 약 1억 속으로, 국내 총소비량(약 7000만 속)을 크게 웃돌았다.

세계에서 김을 길러 파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3개국 정도다. 한국은 세계 김 시장에서 70.6%(2022년 기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내수시장 위주인 일본은 생산량이 계속 줄고 있고, 중국은 수질이 탁하고 양식·가공 기술이 한국보다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전남 지역의 김 양식장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서 도매업자가 찾아와 2년치 원초 생산량을 선(先)주문했다”며 “외국 업체들이 원초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미리 사두기 시작하면서 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 효자’라지만…국내 소비자는 울상
이상기후 여파로 생산량도 줄고 있다. 물김의 최적 생장 온도는 10도 미만인데, 기후 온난화로 가을·겨울철 해수면 온도가 그보다 높아지면서 김이 녹아 사라지는 갯병이 자주 발병하고 있다. 한 김 양식업자는 “갯병이 번져 작년 수확량이 예년보다 30%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수온 상승으로 생산량을 좌우하는 채묘(종자 생산)·수확 시기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동네 분식집 단골 메뉴인 김밥 가격도 꿈틀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김밥 한 줄의 평균 가격은 3323원으로, 1년 전보다 7% 넘게 올랐다.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엔 “김 가격이 너무 올라 3000원대 김밥 가격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다”는 글이 넘쳐난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김 공급량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수출만 계속 늘면 국내 소비자들은 더 비싼 가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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