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상대방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 정부, 한정된 보조금을 나눠 가질 경쟁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세계 1위 TSMC와 미국의 반도체 챔피언인 인텔.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기 위해 벌인 협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미 정부는 ‘보조금을 외국 기업에 퍼준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깐깐한 잣대를 들이댔다.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은 527억달러(약 70조원)로 한정된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타내기 위해 틈만 나면 라이벌을 깎아내리곤 했다. “미국 기업에만 보조금을 줘야 한다”(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는 노골적인 요구가 공개적으로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끈 협상 결과는 삼성의 ‘판정승’이었다. 인텔(100억달러 추정)에는 못 미치지만 TSMC(50억달러)보다는 많은 60억달러 안팎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삼성전자는 이 돈을 미국에 추가로 투입해 현지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예상치보다 2.5배 늘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가 최첨단 공장 1~2개를 추가로 짓겠다는 계획을 미국 정부에 제출했을 것”이란 전망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산술적으로 400억달러 이상 투자해야 이 정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40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 2기를 짓고 있는 TSMC의 예상 보조금 규모가 50억달러란 점도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업계에선 미국 신(新)공장도 파운드리사업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파운드리 기업에 대규모 생산 주문을 맡기는 대형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들이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서다. 미국에 넉넉한 생산시설을 갖춰놓으면 지금도 파운드리에 대규모 물량을 발주하고 있는 엔비디아와 AMD는 물론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 자체 칩 설계에 나선 빅테크도 새로운 고객으로 맞이하기 쉽다.
일각에선 메모리 반도체 라인을 들여놓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수주 사업인 파운드리의 특성을 감안할 때 무턱대고 공장을 늘리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서다. 지난해 1월 열린 삼성전자 콘퍼런스콜에서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테일러 공장은 단기적으로는 파운드리에 집중할 계획이지만 메모리 반도체의 다양한 생산거점 확보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대용량 D램 패키지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경쟁력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메모리와 최첨단 패키징(여러 칩을 쌓거나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는 공정) 라인이 함께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 정부와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 보조금 협상이 끝을 향해 가면서 치열한 고객 확보전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십조원을 투자하는데, 자칫 공장을 놀릴 수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의 간판 공정인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라인을 테일러에 구축하고 연말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관건은 대형 고객사의 물량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다. 텐스토렌트, 그로크 등 중소 스타트업을 고객사로 확보했지만 공장 가동률을 높이려면 큰손 고객의 주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황정수/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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