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계약 종료 이후 세입자가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는 전세 사기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에서 세입자가 전세 사기 특별법상 피해자로 인정받은 경우만 1만2928건에 달한다.
전세 사기가 발생했다고 하면 다세대·연립 등 빌라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보증금을 떼일 위험성이 가장 높은 곳은 다가구주택이다. 법률상 단독주택이지만 한 집에 최대 19실까지 거주할 수 있고, 호실별로 등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집주인이 사망했다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가 한층 까다로워진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다가구주택에 전세를 살던 도중 집주인이 사망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씨는 "2년 전 경기도 안양의 다가구주택에 전세로 왔고 보증금 9000만원을 넣었다"며 "집주인 아내 B씨에게서 집주인이 사망했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밝혔다.
B씨가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집주인인 남편이 투병 중 사망했고, 가족들은 상속을 포기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메시지에서 B씨는 "가족 중에 상속자가 없으면 결국에는 국가가 이 집을 귀속하게 됩니다. 국가에서 무료로 하는 변호사님과 상담하셔서 대처하시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A씨는 "올해 2월이 계약 만료일이고 보증금은 죽은 집주인 통장으로 넣었다"며 "등기부등본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받거나 한 것이 없었고 전세 보증보험은 들지 않았다. 내 9000만원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불안함을 호소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다가구주택 임대차 계약 때 선순위 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와 납세 증명서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공인중개사도 최우선 변제금이 얼마인지, 최우선 변제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다만 이미 계약을 맺고 전세를 살던 A씨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A씨의 글을 본 누리꾼은 "서둘러 세입자 현황을 알아봐야 한다", "지인도 집주인이 죽었는데, 후순위로 밀리면서 보증금 7000만원을 못 돌려받았다", "상속받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한테 소송을 걸어야 하느냐", "당장 변호사를 구해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부동산 전문변호사는 "우선 사망한 집주인 명의로 보증금 반환 소송을 내고, 이후 가족관계 등록부 등을 확인해 상속인을 피고로 지정하면 된다. 상속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가 승계된다"며 "다만 상속 절차가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으니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은 1순위 상속인(배우자·자녀)가 포기하더라도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진행된다. 엄 변호사는 "상속 절차를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며 "상속 절차가 길어질 경우 세입자는 묵시적 갱신이나 갱신 요구권 행사를 통해 시간을 벌어놓고 일 처리를 하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계약이 갱신되면 상속인이 결정된 후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빠르게 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 진행된 상속 절차에서 모든 구성원이 상속을 거부한다면 세입자는 '상속재산관리인'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상속재산관리인이란 상속인이 여럿이거나 존재하지 않을 때 상속재산의 관리 및 청산을 위해 가정 법원이 선임하는 관리인이다. 해당 건물이 국고로 귀속되는 경우에도 상속재산관리인이 국가의 대리인이 되어 관련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엄 변호사는 "가정법원에 상속재산관리인 선임을 신청하면 관리인이 지정될 것"이라며 "지정된 관리인을 피고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관리인과 세입자가 협상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게 된다"며 "세입자가 많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 주택을 경매로 처분하고 나누게 된다. 이런 경우 보증금을 받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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