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마이닝어 베를린필미디어 총괄책임자(사진·60)는 18년 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1995년 첼로 단원으로 입사해 이듬해 베를린필 수석첼리스트가 된 마이닝어는 디지털 콘서트홀(DCH) 설립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인물이다.
30년째 이곳에서 단원이자 매니저로 몸담아 온 그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인터넷이 급격히 부상하고, CD 시장이 빠르게 줄어드는 변화가 있었다”며 “공연의 디지털화가 오케스트라와 클래식 음악이 계속 연주될 수 있는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적이지만, 당시엔 스마트폰도 나오기 전이었다. 단원들의 초기 반응은 냉랭했다. 라이브 연주를 남기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빅 브러더’가 연주를 감시하는 것 같아 음악에 몰입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1년간 단원을 끊임없이 설득한 끝에 당시 상임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을 비롯해 단원 모두를 디지털화에 몰두하게 했다.
“실행은 더 어려웠죠. 촬영이나 녹음이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하고, 퀄리티는 좋아야 했으니까요. 시작부터 음질은 CD 퀄리티, 화질도 고화질(HD)을 원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퀄리티였고 그것과 타협할 생각은 결코 없었어요. 그래서 3년이라는 준비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퀄리티’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최고의 품질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를린필미디어는 빠르게 무언가를 내놓으려 하기보다는 더 좋은 품질로 제작하기 위해 기다리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혁신 사례로 언급되지만 그보다 품질을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연주할 때도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연주할지 고민하고 최고의 퀄리티로 최선을 다할 때 관객의 마음에 닿을 수 있으니까요. 디지털 작업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DCH 이후 베를린필의 가장 큰 변화는 ‘글로벌 청중’이 생겼다는 점이다. 세상을 떠난 지휘자들의 연주 영상을 복원하고, 모든 콘서트 기록을 남겨 15년간 연주 영상만 780여 개, 그동안 다룬 클래식 작품만 1700여 개 레퍼토리에 달한다. 아티스트 인터뷰 등 필름도 제작해 그야말로 ‘베를린필 글로벌 팬덤’을 구축했다.
베를린=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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