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봉제에선 AI인재 안 온다…기술전쟁 이기려면 임금체계 바꿔야"

입력 2024-03-18 18:14   수정 2024-03-26 15:12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파업으로 인한 근로 손실일이 연평균 38일을 기록했어요. 매년 한 달 넘게 공장이 ‘올스톱’된 겁니다. 미국은 근로 손실일이 1년에 1주일, 일본은 하루가 채 되지 않습니다.”

18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네 번째 임기 시작 후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강성 노조는 매우 공격적인 형태를 띠고 있음에도 기업은 이를 방어할 수단이 전혀 없어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손 회장은 “사업장 점거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등의 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부터 경총을 이끌고 있는 손 회장은 지난달 총회에서 회원사 만장일치로 회장직에 추대됐다. 손 회장은 이번 임기 중 꼭 완수하고 싶은 핵심 3대 임무로 △노동시장 선진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상속·법인세 인하를 꼽았다.
호봉제 채택 기업 여전히 65%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 노사협력 수준은 세계 141개국 중 130위에 불과하다. 고용과 해고의 유연성, 임금 결정의 자율성 등에서 모두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손 회장은 이런 데이터를 근거로 “노동시장 선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총이 가진 모든 역량을 집중해 ‘노동 개혁 추진단’을 만들어 지원하겠다”고 했다.

경총이 추진할 노동 개혁의 방향은 ‘연공과 서열’이 아니라 ‘직무와 성과’에 따라 일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는 임금 체계 마련이다. 손 회장은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직원 수 1000명 이상 기업 중 65%가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며 “이런 제도 아래에선 기업이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문가를 영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수억원대 고연봉을 줘서라도 미래 핵심 인재를 채용하고 싶지만, 연공과 서열에 맞는 마땅한 ‘호봉표’가 없기 때문이다. 20대 연구원을 최고경영자(CEO) 직급으로 데려오는 웃지 못할 편법까지 벌어진다는 것이 손 회장의 설명이다.

지난해 불거진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정부안의 핵심은 1주일에 12시간 한도로 할 수 있는 연장근로 단위를 시장 상황에 맞게 1개월~1년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었음에도 노동계가 씌운 ‘주 69시간’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 회장은 “이번 임기에는 노동계를 설득해 근로시간 제도를 개편할 것”이라고 했다.
‘미스터 쓴소리’의 고언
정부가 추진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상속세제 개편 없이 불가능하다고 손 회장은 단언했다. 60%에 달하는 최고 세율을 고치지 않고서는 상장사 주가가 오르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평균 상속세율은 26.5%다.

손 회장은 “자녀의 가업 승계를 앞둔 한 오너 경영인이 털어놓길 ‘기업 주가가 오르면 화가 나고 반대로 주가가 내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며 “현재 한국의 조세 제도는 기업인이 경영 활동을 열심히 잘해서 기업의 가치를 높이려는 의지를 꺾는다”고 말했다.

이번 임기 중 중대재해처벌법 완화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중대재해는 ‘처벌’이 아니라 ‘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50인 이상 사업장에 법을 적용한 2022년 사고 사망자는 256명으로 법 시행 전인 2021년보다 오히려 8명 많아졌다. 그럼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 적용됐다.

손 회장은 “전국 중소기업 대표 84만 명은 중대재해처벌법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며 “처벌 규정을 완화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법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총은 올해 상반기에 ‘중대재해 종합대응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에 중대재해 예방 컨설팅을 해주고 전국 순회 교육을 실시하며 매뉴얼을 만들어 보급할 계획이다.
경총, 국회와 기업의 가교
손 회장은 이런 핵심 3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국회와의 소통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인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22대 국회에 바라는 것을 물었다. “올해는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우려됩니다. 기업 경영 환경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여야가 이념 갈등과 소모적 정쟁을 멈추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법안을 마련하는 데 마음을 모아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재후/김진원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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