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움직이는 쓰나미가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정책결정회의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도 불구하고 완화적인 통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11년 만의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 폐기에도 불구하고 엔·달러 환율이나 일본 증시는 일단 안정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외환·금융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일본 물가 상승률은 3.1%를 기록하며 1982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작년 1월 일본은행은 2024년과 2025년 물가상승률을 각각 1.6%와 1.8%로 내다봤지만 1년 뒤인 지난 1월에는 예상치를 각각 2.4%와 1.8%로 대폭 올려 잡았다.
일본은행은 그동안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대신 금리 상승 허용폭이란 변칙제도를 운용하며 대규모 금융 완화를 이어갔지만 국채·ETF 매입 등으로 일본은행의 부담만 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2023년 3분기 말 기준 일본이 발행한 국채 1066조엔(약 9497조원) 가운데 53.9%인 574조엔어치를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올해 2월 말 기준 일본은행이 보유한 ETF의 시가총액은 71조엔으로 도쿄증시 최상위 시장인 프라임시장 전체 시총의 7%를 넘는다.
우에다 총재도 향후 금리정책 운용 방향을 묻는 말에 “당분간 완화적인 금융시장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해 연 0.25%, 내년 연 0.5% 정도로 완만하게 올려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행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지 않으면 미국(기준금리 연 5.0~5.5%)과의 금리 차는 5%포인트 안팎을 유지한다. 엔저 방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메가뱅크 관계자는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적인 환경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내는 한 엔화 가치의 반등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가치는 150.3엔대까지 밀리며 또다시 26년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이 예상을 깨고 본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0)’인 엔화를 빌려 미국 등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급격히 청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4월 발표한 국제 금융 안정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이 금융 완화를 조정하면 호주 유럽연합(EU) 미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자금 유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즈호리서치&테크놀로지는 “장기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늘어나는 이자 부담 때문에 일본 기업의 영업이익이 5% 줄고 GDP도 0.3%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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