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게임사들이 줄줄이 수장을 교체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의 파트너를 세워 창사 이래 '첫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한 엔씨소프트를 비롯해 주요 게임업체라 불리는 3N(넥슨·엔씨·넷마블) 모두 새로운 대표를 선임했다. 카카오게임즈·위메이드·컴투스 등도 리더십 개편에 들어가는 등 변화 바람이 거세지는 분위기다.
신임 공동대표로 선임된 박병무 VIG 파트너스 대표는 경영과 투자 부문을 전담하고 김택진 대표가 개발을 맡는다. 엔씨는 또 이사 7명에게 지급할 보수 최고한도를 200억원에서 올해 150억원으로 낮췄다.
김택진 엔씨 대표는 이날 미디어 설명회를 열고 "공동대표 체제를 통해 본인은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운영책임자(CCO)로서 게임 개발과 사업에 집중하고 오랜 시간 엔씨의 경영 자문을 맡아온 박병무 대표는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려 신성장 동력을 만들 것"이라며 "지식재산권(IP)을 기반으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는 게임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가치 있는 성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내정자는 "현재 엔씨소프트를 둘러싼 대내외 상황이 어려운 만큼 위기 타파를 위해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류를 결심했다"며 "국내외 게임사와의 인수합병(M&A)과 투자에 최선을 다해 게임 퍼블리싱권 확보뿐 아니라 재무적 안정성을 확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넥슨은 업계 침체에도 기존 스테디셀러 PC와 모바일 게임 등으로 호실적을 보였다. 신작 '데이브 더 다이버' 등의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4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냈다. 그러나 올 1월 '메이플스토리' 확률형 아이템 조작으로 인해 116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새로운 리더십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비하고 성과를 이어가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넷마블도 최근 김병규 경영기획 담당 부사장을 각자 대표로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2015년 넷마블에 입사해 법무와 위기관리 해외 계열사 관리 등을 맡았다. 사업 총괄을 맡은 기존 권영식 대표와 공동대표 체제로 넷마블을 경영한다.
카카오게임즈는 한상우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과거 네오위즈 중국 법인 대표와 글로벌 사업 총괄을 맡으며 스마일게이트의 1인칭슈팅게임(FPS) '크로스파이어'를 중국 시장 진출에 기여한 인물로 꼽힌다. 2년 연속 영업 적자를 낸 컴투스는 신임 대표이사로 재무통인 남재관 사업경영담당 부사장을 내정했다. 남 내정자는 카카오게임즈 최고재무책임자(CFO), 카카오 부사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컴투스에 합류했다.
위메이드는 12년간 이사직에서 떠나있던 창업자 박관호 이사회 의장이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장현국 대표는 부회장직을 맡아 블록체인 부문 사업 자문을 맡게 됐다. 2000년 위메이드를 설립한 박 대표는 한국과 중국에서 크게 흥행한 '미르의 전설2'의 개발을 맡았었다.
최근 게임업계는 업황 침체에 규제 칼바람까지 더해져 위기를 맞았다. 특히 확률형 아이템 조작 문제가 대두된 게 관건이다. 국내 게임사들은 오는 22일부터 시행되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제도에 따라 의무적으로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자율적으로 정보를 공개해왔을 때보다 규제 방식이 다양하고 복잡해져 관리에 필요한 부담이 늘어났다.
업체 간 저작권 표절 분쟁도 이어지고 있다. 엔씨는 카카오게임즈와 레드랩게임즈가 함께 개발과 서비스를 맡은 '롬'이 자사 대표작 '리니지W'를 표절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넥슨과 아이언메이스도 '프로젝트 P3'를 놓고 표절 공방을 벌이고 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과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등의 이슈가 뜨거운 감자가 된 만큼 대형 게임사 같은 경우 위험관리(리스크 매니지먼트)에 주력하기 위해 법조계 출신이나 소송 관련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며 "게임사들이 투톱 체제를 선택한 것은 한쪽은 게임 개발이나 기획, 인원 관리 등 내실을 챙기고 한쪽은 대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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