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걸려 온 전화번호 앞자리를 ‘070’에서 ‘010’으로 바꿀 수 있는 '변작 중계기'를 이용해 50억원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인 일당이 검거됐다. 보이스피싱 범죄 합동수사단 출범 이후 검거된 조직 중 역대 최대 규모다.
20일 서울 동부지검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수민)은 범죄단체가입 및 활동,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를 받는 보이스피싱 발신 번호 변작 중계기 운영조직 간부 등을 수사해 21명을 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를 이용해 번호를 조작한 후, 금융기관 등을 사칭해 피해자 170명으로부터 약 54억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발신 번호 변작 중계기는 여러 개의 유심칩을 장착해 휴대전화 발신 번호를 조작할 수 있는 장치다.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해외에서 온 전화를 국내에서 온 것처럼 위장하는 데 쓰인다. 해당 보이스피싱 조직은 일반 시민들이 ‘070’ 등으로 시작되는 인터넷 전화는 잘 받지 않아 범행이 어렵게 되자 이 변작 중계기를 이용해 ‘010’ 휴대전화 번호로 바꿨다.
일당은 2023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책 '골드'가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중계기 운영 집단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수당지급책 △부품 보관소 관리책 △중계기 관리책 △환전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콜센터 조직과 함께 수사기관 및 금융기관을 사칭해 범죄를 벌였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계좌가 범죄 연루됐다”거나 “저금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중국 연길을 거점으로 점조직·분업화된 조직으로 활동했다. 중국인(조선족) 출신 총책 A씨가 중국 연길에서 자금 관리책 및 조직원 관리책 등과 함께 중계기 운영 범죄집단을 조직하고, 페이스북 등 인터넷을 통해 국내 조직원을 모집했다. 국내에선 중국뿐 아니라 태국, 남아공과 아이티 출신의 조직원을 뒀다. 이들은 △중계기 관리책 △환전책 △수당지급책 △부품보관소 관리책 △유심보관소 관리책 △부품배달책 등으로 제각각 다른 역할을 맡았다.
검찰 관계자는 "수당 지급을 ‘환전책 - 지급책’으로 이원화하고, 중계기 부품관리에서도 ‘부품관리 ? 부품배달 ? 부품 조립·중계소 운영’으로 역할을 나누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A씨는 초기에는 조선족을 중심으로 조직원을 모집했지만, 수사기관의 수사 등으로 조선족 조직원 모집이 어려워지자 ‘숙소 제공, 고액의 수당’ 등을 제시하며 국내에서 정상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태국인, 남아공인 등을 모집했다.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 또는 난민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국내에서 수당 및 중계기 부품을 ‘던지기’ 방식으로 전달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중계소 위치 등을 파악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검찰은 범행에 사용된 계좌 거래내역, 텔레그램 대화 및 포털사이트 접속내역 등을 분석해 일반 원룸으로 위장되어 있던 중계소 11개소, 부품보관소 4개소 등을 적발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발신 번호 변작중계기 1694대(784회선), 휴대전화 유심 8083개, 휴대폰 443대, PC 121대, 공유기 193대 등을 압수했다.
검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신종수법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것"이라며 "중국 소재 총책 및 간부급 조직원들의 신원을 밝혀내 이들을 추적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2022년 7월 합수단 출범 이후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은 4472억원으로 2022년 5438억원 대비 18%가량 감소했다. 2022년엔 2021년 7744억원 대비 약 30% 감소해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합수단은 2022년 7월 이후 현재까지 보이스피싱 조직원 433명을 입건하여 150명을 구속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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