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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오후, 비트코인 가격이 1억 원을 넘었다. 같은 시간, 해외 언론은 비트코인 가격이 7만 달러를 넘었다는 소식을 내보내고 있었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초반대이고, 7만 달러는 원화로 9000만원을 조금 넘는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10% 가까운 차이가 보인다.
이 차이를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가상자산 투자자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쓰이던 단어였는데, 이제는 외신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다. 김치 프리미엄은 비트코인 가격과 함께 상승하여 3월 16일 비트코인 기준 10.88%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원화로 비트코인을 구매할 때 달러 대비 10.88% 이상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발생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가상자산 시장 초기인 2013년쯤에는 40%를 초과한 적도 있었고, 그 후로도 5% 내외를 유지했다. 2021년 ‘크립토 윈터’ 시기에도 김치 프리미엄은 지속되었다.
익숙한 서사는 근거와 논리를 뛰어넘어 진실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그런데,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자국 화폐 가치 불안정으로 가상자산 가격과 수요가 폭증한 터키나 브라질에서는 왜 ‘케밥 프리미엄’이나 ‘삼바 프리미엄’이 발생하지 않을까? ‘냄비근성’ 가득한 한국인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는 미국 주식에는 왜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하지 않을까?
근본적인 원인은 가상자산과 원화(KRW)간 수급 불균형 때문이다. 원화로 비트코인을 사려는 수요가 폭증할 때 국내에서 원화로 구매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수가 적으면 프리미엄이 발생한다. 비트코인 가격은 다른 가상자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비트코인에 발생한 김치 프리미엄은 전체 가상자산으로 번진다. 김치 프리미엄이 발생할 때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해외 거래소에서 달러로 비트코인을 매수해 한국 거래소로 옮겨 와서 매도하면 김치 프리미엄은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간 김치 프리미엄은 계속 발생해 왔다.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 시장에 존재하는 세 가지 특수한 규제 때문이다. 첫째는 개인의 달러 송금을 제한하는 외국환거래법이다. 둘째는 기업과 기관의 가상자산 보유 및 거래를 금지하는 그림자 규제이며, 셋째는 비트코인 현물 ETF 취급 금지이다.
1961년에 시행된 외국환관리법은 IMF 외환위기 시기에 외국환거래법으로 재정비되며 개인의 미신고 해외송금을 5만 달러로 제한해 왔다. 작년 7월에야 10만 달러로 완화됐다. 즉, 개인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와 국내 거래소 간 재정거래(arbitrage)를 할 수 있는 합법적 한도가 연간 10만 달러라는 말과도 같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들 모두가 해외 거래소나 해외 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것이니 실제 개인 투자자들이 거래소 간 재정거래를 통해 김치 프리미엄을 해소할 수 있는 규모는 크게 제한돼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 2021년에는 일부 해외 거래소에서 신용카드로 가상자산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나, 카드사에서 전면 차단했다. ‘위법 소지가 있다’는 당국의 판단이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3년이 지난 올해 초에야 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 거래 금지 대상에 가상자산을 추가했으니, 그동안의 조치는 행정지도나 그림자 규제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법인과 기관의 가상자산 거래가 차단돼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에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를 막는 조문은 없다. 다만, 2021년 특금법 시행 이후 국내 법인은 가상자산 원화 시장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 거래소와 계약된 은행들이 실명 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내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관의 경우, 2017년 정부가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매입·담보 취득·지분투자를 금지한 이후 접근이 완전히 차단돼 있다.
더 나아가, 정부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 증권사가 취급하는 것을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과 함께 금지했다. 작년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장기간 상승하면서 비트코인 신규 투자수요는 증가했으며, 올해 1월 미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기점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만약 국내 개인 투자자들의 비트코인 투자 수요를 ETF로 분산했다면 올해 1월부터 김치 프리미엄은 상당 부분 감소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상기한 2017년 기조는 올해에도 굳건했고, 국내 증권사들은 거래 시작 당일에 온라인 홍보 배너를 내리는 촌극까지 빚었으며, 비트코인 김치 프리미엄은 비트코인 가격과 함께 급등했다.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규모와 전문성을 가진 법인과 기관의 진입은 차단되어 있고, 개인의 외화 송금에는 제한이 걸려 있으며, 투자수요를 분산할 파생상품 거래마저 막혀 있으니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법과 규제가 만든 구조적인 불균형이다.
김치 프리미엄으로 이익을 보는 자들도 있다. 불법 해외송금을 통해 재정거래를 하는 업자들이다. 작년 10월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가상자산 구매를 위한 불법 외환거래 적발 금액은 10조3689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과태료 처분을 받은 금액은 2조2961억원에 불과했다. 이 중 99.4%가 가상자산 구매자금 허위 증빙 송금, 가상자산 구매자금 중 은행을 통하지 않은 자금이었다.
실제 가상자산 업계의 변두리에는 해외로 자금을 송금해서 가상자산을 매수해 국내 거래소에서 매도해서 김치 프리미엄 이익을 얻는 업자들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 도박 자금 송금 경로를 사용하거나, 무역서류를 위조해서 자금을 송금한다는 사실이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왔다.
놀라운 사실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조단위 금액을 송금해 1000억원 대의 이익을 가져간 업자들에게 무죄가 선고됐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9개 은행 256명의 계좌에서 4조 3000억원을 해외로 송금했으며, 이 과정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서 무역 대금을 보내는 형식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불법으로 보이는 이들의 행각에 법원은 올해 2월 무죄를 선고했다.
일반 개인이 개인 신용카드로 해외에서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것은 행정조치로 차단됐지만, 페이퍼 컴퍼니와 무역서류 위조를 통해 김치 프리미엄으로 수천억 원 대의 수익을 만들어 낸 것은 무죄다. 전문적인 의사결정과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의 정상적 가격발견 기능을 수행할 기업과 기관은 가상자산 원화 시장에 진입이 차단돼 있고, 개인 투자자들은 보호장치 없이 무제한으로 노출되어 있는데 개인 투자자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증권사를 통해 접근하는 것은 차단돼 있다.
알아서 법을 준수하려는 선량한 투자자는 김치 프리미엄을 매수하게 되고, 법의 사각지대를 노리는 자들은 천문학적 이익을 본다. 이쯤 되면 정부의 규제와 지도가 누구를 어떻게 보호하려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 규제 하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김치 프리미엄을 매수해야 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고, 이익을 보는 것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천억원대의 이익을 얻은 가짜 무역업자들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가 변화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여당은 △비트코인 현물 ETF의 발행·상장·허용 검토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단계적 허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야당은 △기관 투자자 등 스마트머니부터 가상자산 시장 참여 허용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상장·거래 허용 △가상자산 현물·선물 ETF,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편입 허용을 약속했다.
가상자산 투자자를 위해 외국환거래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니, 김치 프리미엄을 해소하려면 법인과 기관의 가상자산 시장 진입 및 투자 허용이 가장 시급하다. 또한,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 증권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 취급 허용 또한 빠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변해야 살아남는다’라는 격언은 기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도, 시장도, 국가도 변해야 살아남는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연구위원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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