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규 크래프톤 창업자, 올해 결단 "대형 M&A 준비"

입력 2024-03-20 17:43   수정 2024-03-20 18:11

게임 업계에서 7년째 깨지지 않는 기록이 있다. 크래프톤이 2017년 슈팅(총쏘기) 액션 게임으로 내놨던 ‘펍지: 배틀그라운드’의 최대 동시 접속자 수다. 2018년 1월 세계 최대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에서 325만7248명이 동시에 이 게임을 즐겼다. 온라인 활동이 절정이었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시기에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크래프톤 창업자인 장병규 의장이 ‘2라운드’를 준비한다. 게임 프랜차이즈 사업에 도전한다. 배틀그라운드 지식재산권(IP)으로 여러 게임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게임들을 쏟아내는 사업 방식을 선보이겠다는 얘기다.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대형 인수합병(M&A)도 올해 안에 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맥도날드처럼 곳곳에 IP 심겠다”
장 의장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크래프톤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배틀그라운드의 원천 IP인 펍지를 프랜차이즈 게임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게임 업계에서 프랜차이즈는 하나의 IP를 두고 여러 업체가 제작하는 방식을 뜻한다. 프랜차이즈로 게임을 만들면 PC, 콘솔, 모바일 각종 플랫폼에서 슈팅, 역할수행게임(RPG), 모험 등 다양한 장르로 콘텐츠 규모를 키울 수 있지만 그만큼 IP의 매력이 강렬해야 한다.


디즈니 IP인 마블이 여러 제작사의 손을 거쳐 영화 수십개로 탄생한 경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국내에선 아직 프랜차이즈 게임으로 성공한 업체가 없다. 해외에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액티비전블리자드 정도가 슈팅 게임 ‘콜오브듀티’로 성과를 거뒀다.

프랜차이즈 전략을 결단한 이유에 대해 장 의장은 “특정 기획자가 아니라 시스템이 게임을 만드는 프랜차이즈 체계를 갖춰야 20~30년 존속이 가능하다”며 “외부 제작사와도 협업해 펍지 IP로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고 말했다. “전세계 번화가에 맥도날드가 있듯 어느 게임 분야를 가더라도 펍지라는 프랜차이즈가 보이도록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게임업계에선 크래프톤이 프랜차이즈 전략으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비주얼캐피털리스트에 따르면 배틀그라운드는 전세계에서 5번째로 많이 팔린 게임이다. 판매량(7500만장)이 슈퍼마리오 브라더스(5800만장), 포켓몬스터(4800만장) 등을 웃돈다. 2022년 게임을 무료로 풀고 캐쉬 아이템을 판매하는 쪽으로 사업모델을 바꿨지만 지금도 인기가 여전하다. 지난 19일 스팀에서 배틀그라운드의 동시 접속자 수는 68만명으로 2위였다.
“블록체인, 메타버스는 지켜볼 것”
장 의장은 “올해는 사업 다각화의 원년”이라며 “연내 대형 M&A를 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그는 “작년부터 M&A 시장을 조사했다”며 “게임을 포함한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등의 업종에서 투자 대상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게임에서만 7600억원 규모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지난 18일 밝힌 상황이다. 이 회사가 지난해 말 기준 투자한 외부 제작사는 20여곳에 이른다.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게임 생태계에 접목할 수 있는 신기술에 대해선 신중한 의견을 드러냈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가상자산에 대해 장 의장은 “가상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일리가 있지만 화폐를 대체하는 등 다른 용도로는 아직까지 보수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메타버스는 콘텐츠 투자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기기 발전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애플 비전프로가 보여준 위력이 있지만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콘텐츠 회사가 투자하기엔 지금은 이른 감이 있다”고 했다.

AI 기술은 게임 제작의 생산성 향상, 이용자 경험(UX) 개선 등을 두 축으로 삼아 개발하기로 했다. 장 의장은 “생산성 향상보다 영향력이 큰 건 새로운 재미나 서비스가 나오는 것” 이라며 “AI로 완전히 다른 사회적 상호작용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선보일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의 아바타 생성에서도 AI 기술을 일부 적용할 계획이다.

“인도 성장세 10년 간다”
크래프톤은 인도에서 투자 결실을 거둘 기회도 노리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데브시스터즈와 모바일 게임 ‘쿠키런’의 인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장 의장은 “중국의 고도성장기 못지 않은 인도의 성장세가 5~10년간 지속될 것”이라며 “한국이 선진국이 돼 가면서 여가 생활을 존중하는 문화가 생겨났던 현상이 인도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기적으론 인도 정보기술(IT) 인재가 게임 분야로 유입돼 산업 성장 기반이 견고해질 것이란 게 그의 예상이다. 장 의장은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맡으며 인도를 방문했을 때부터 현지 진출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의장은 “인도가 잘되면 중동에서도 잘 될 것”이라며 “두 시장은 동조화 현상이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중국 게임의 선전에 한국 업체가 고전하는 데엔 노동제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장 의장은 “지금 제도로는 게임 프로젝트에 실패해도 인력 재배치가 너무 어렵다”며 “프로젝트 단위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게임 산업에서 노동경직성이 10년 이상 계속되면 산업 경쟁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별로 노동제도를 다르게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I 있어도 평생 배우자”
장 의장은 게임 산업에 도전하려는 청년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도 층위가 있다”며 “정말 훌륭한 엔지니어는 아래 층위까지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고급 언어인 파이썬을 쓰더라도, 언어, 운영체제, 하드웨어 등의 층위까지 폭넓게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게임 산업은 커리어 기간 동안 자기가 배운걸 버리고 새로 배워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생성 인공지능(AI) 보급으로 인해 평생 학습의 중요성이 커졌단 의견도 피력했다. 장 의장은 “딥러닝 도구에 대한 이해는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필요하다”며 “기초가 튼튼하고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차별화될 것”이라며 “대학 과제에 챗GPT를 쓰는 건 찬성이지만 딥러닝이 나왔다고 대학교육이 필요없다고 하는 건 이상하다”고 했다.

크래프톤은 대학 재학생·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인 ‘정글’을 운용하고 있다. 장 의장은 “정글은 졸업생 대상에서 재학생 대상으로 바뀌는 추세”라며 “대학교 3·4학년에 되면 ‘5춘기’라고 부르며 긴장감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올 연말 정도에 정글 캠퍼스를 완공하면 연 1000명까지 5개월씩 정글을 체험 하는 규모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누구

장 의장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성공한 창업가로 첫손에 꼽힌다. 1991년 카이스트 전산학과에 입학한 뒤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네오위즈를 공동 창업한 뒤 2005년 인터넷 검색 솔루션 업체인 첫눈을 차렸다. 그 다음해 NHN에 첫눈을 360억원에 매각하고 벤처투자사인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를 창업했다. 이 투자사는 우아한형제들, 틱톡, 뷰노 등의 초기 투자에 참여하면서 성과를 냈다. 2007년엔 크래프톤의 전신이 된 블루홀스튜디오를 차렸다. 문재인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장을 1·2기 두 차례 역임하기도 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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