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공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한 지 정확히 한 달 만에 2000명의 의대 정원 배분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아직 1만 명에 달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고, 교수들마저 사직을 예고하는 등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증원 규모를 둘러싼 타협의 여지를 없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돼 온 타협 불가피론을 불식하고 4월 총선에 상관없이 의료개혁을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당초 3월 말에서 4월 초로 예상된 의대 정원 배분을 이날 조기 마무리한 것은 소모적인 논쟁을 줄이고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2월 1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계획을 발표한 이후 정부는 “증원 규모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하면서도 의료계를 설득해 왔다. 필수의료 붕괴 문제 해소 대책을 2월 이후 35개 쏟아내고 공식·비공식적 만남도 50여 차례 가졌다. 이 과정에서 필수의료 보상 확대에 10조원 이상 투입, 전공의 연속 근무 축소,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법적 부담 경감 등 그간 의료계의 핵심 요구 사항 상당수를 들어줬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들이 ‘증원 철회’를 고수하면서 협상이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판’을 흔드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편집인 포럼’에서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을 완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촉발된 해묵은 보건의료 제도 개선 작업에도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부는 의사단체들이 반대해온 비대면 진료를 사실상 전면 허용하고, 진료보조(PA) 간호사의 업무 영역도 인정했다.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 등 의사들이 해결을 요구해온 고질적 문제도 해소되는 양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 공백이 보건의료 정상화 계기가 됐다”며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 미용성형 등 그간 의사들의 높은 소득을 뒷받침한 제도적 기반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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