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얼어붙은 명품 시장에서도 20% 이상 매출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로 꼽힌다. 지난해도 연간 매출이 134억 유로(약19조2000억원)에 달했다. 한국 시장에서만도 연간 6000억원 이상씩(매출 기준) 벌어들인다.
하지만 에르메스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가방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듣기 일쑤다. 배짱 영업이란 소비자 불만이 흘러나오는 이유다. 에르메스는 이처럼 팔 물건도 없는데 어떻게 장사를 하고 수익이 급성장하는 것일까.
이 때문에 에르메스는 미국에서 소송전에 휘말렸다. 20일 영국 일간 가디언 등 보도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소비자 2명은 "에르메스가 버킨백 판매시 해당 소비자가 충분히 ‘가치 있는’ 고객인지 선별하는 게 부당하다"며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버킨백을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없으며 오프라인 매장에도 제품이 전시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에르메스 판매 직원들이 버킨백을 사려는 소비자에게 자사의 신발, 스카프, 액세서리 등 다른 아이템 구입을 조건으로 제시한다고도 했다.
이들은 "버킨백을 구매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비자에게 (별도의 공간에서) 버킨백을 보여준다. 버킨백을 구매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다른 아이템과 액세서리를 구입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버킨백의 엄청난 수요와 낮은 공급은 에르메스에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제공하고 에르메스는 이를 이용해 소비자에게 자사의 다른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연계 판매’를 한다. 이는 독점금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에르메스 측은 소송과 관련한 입장 요청에 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고 시장에서 사려면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웃돈)을 얹어줘야 한다. 에르메스의 독특한 유통구조 때문이다. 상위 1%만 살 수 있다는 에르메스 버킨백은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도 2~3년씩 기다려야 구입할 수 있다. 특별한 가죽을 사용한 한정판(스페셜 에디션)은 현금을 들고 가도 살 수 없다. 에르메스의 VVIP들에게 먼저 선택권이 주어지는 탓이다. 그마저도 수량이 적어 일반 소비자에게 구매할 기회도 없이 품절되기 일쑤다.
에르메스는 전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는데, 본사가 전 세계 매장의 버킨백과 켈리백 등 인기 제품 수량을 철저히 통제한다. 실제로 버킨백과 켈리백의 경우 공급량을 매년 12만개로 제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세계 에르메스 매장 수가 300개 가량 된다는 점을 참작해 단순 추산해보면, 한 매장당 1년에 각 200개씩의 버킨백과 켈리백이 공급되는 셈이다. 다만 국가별, 매장별로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가 달라 국내 매장에는 이보다 적은 수량의 버킨백과 켈리백이 들여올 것으로 추정된다.
한정된 수량의 백을 본사가 조절하며 판매하기에 신제품을 받으려면 웨이팅 리스트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고 몇 년씩 기다리기도 한다. 구매력이 있고 곧바로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은 비싼 웃돈을 주고 중고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사는 이유다.
명품업계에서는 통상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손에 넣기 위해 소비자가 에르메스 국내 매장에서 써야 하는 돈을 5000만~1억원가량으로 본다. 에르메스의 각종 액세서리와 스카프, 그릇 등을 꾸준히 구매하며 에르메스의 충성고객이 돼야 점장이 한정 수량의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내어주는 구조다.
문자 그대로 재고가 없는 게 아니라 “너에게 줄 재고가 없다”는 의미란 뒷말이 사실인 셈이다.
한 명품 매장 점장은 “인기 모델은 한 해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고객만 수백명”이라며 “인기 모델이 리셀시장에서 프리미엄이 크게 붙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나에게 가방을 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구매 이력이 쌓이고 단골이 돼 매장에 많은 수익을 남기는 고객에게 상품을 먼저 팔 수 밖에 없다”면서 “초고가 인기 명품매장에선 큰 손 고객을 위해 점장이 직접 현지에 방문해 원하는 물건을 구해올 정도로 적극적”이라고 덧붙였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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