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상점들은 대부분 컨테이너 가건물에 의존하는 실정이고, 남은 주민들도 텐트와 가건물을 1년째 전전하고 있다.” 지난 2월 6일은 튀르키예 강진이 발생한 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었다. 21세기 최악의 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튀르키예 지진 1년을 맞아 주요 언론은 일제히 로포를 실었다. 기사마다 등장한 핵심어 중 하나가 ‘1년째’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말의 고무줄 같은 쓰임새 때문이다.
‘-째’는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차례나 등급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두 잔째’ ‘세 바퀴째’ 같은 게 그런 쓰임새다. 다른 하나는 ‘동안’의 뜻을 더한다. 이때도 접미사다. ‘사흘째’니 ‘며칠째’ 같은 게 그런 예다. ‘차례’ 용법은 횟수를 나타내는 것이라 시빗거리가 되지 않는다.
‘동안’은 좀 다르다. ‘동안’은 계속 이어지는 기간을 말한다. 그런데 단위가 커지면 두루뭉술해진다. 가령 닷새째니 일주일째니 하는 단수 개념은 명쾌하다. 6일 또는 8일 된 것을 일주일째라고 하지 않는다. 딱 7일째를 일주일째라고 한다. 하지만 한 달째 정도 되면 ‘엄격함’이 떨어진다. 며칠 모자라거나 조금 넘는 것도 두루 한 달째라고 한다. 이게 1년째쯤 되면 더 심해진다. 365일 꽉 찬 것을 두고 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1년을 기점으로 며칠 전후 또는 한 달 정도 전후도 ‘1년째’로 통한다. “2, 3년째”라고 하면 실제로는 몇 달씩 차이 나는 것도 2년째, 3년째라고 말한다. ‘1년째’의 함정인 셈이다.
정리하면 ‘사장 자리가 1년째 공석이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년째다’ 같은 말을 현실적으로 많이 쓰지만, 이는 구체성이 떨어지는 또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일 때가 많다. 이는 정확하지 않고 모호한, 공급자 위주의 편리한 표현 방식이다. 따라서 ‘1년째’보다는 ‘1년 가까이’ 또는 ‘1년 넘게’ 등 실제에 맞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원래 ‘-째’의 풀이에 ‘동안’ 용법이 없고, ‘차례’ 용법만 있었다. 하지만 현실 어법에선 ‘차례’ 못지않게 ‘동안’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반영해 2018년 뒤늦게 이를 사전에 올렸다.
일상에서 ‘-째’의 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가령, 홍길동 씨가 2021년 4월 15일 입사해 2024년 3월 현재 재직 중이라면, 그는 몇 년째 일하고 있는 것일까? 정확히는 2년 11개월째 근무 중이다. 이것을 횟수(차례) 개념으로 따지면 해가 네 번 바뀌었으니 ‘4년째’가 된다. 흔히 “햇수로 4년이다”라고 하는 말은 “4년째”와 같은 말이다. ‘햇수’란 말 그대로 ‘해의 수’다. 단순히 해의 바뀜을 따지기 때문에, 2021년에 입사했다면 2024년 현재를 ‘햇수로 4년’이라고 한다. 그것을 ‘4년째’라고도 한다.
하지만 ‘만’ 개념으로 따지면 올해 4월 15일이 돼야 비로소 ‘만 3년’이다. 그러니 아직은 ‘만 2년’인 것이다. 4월 15일 이후 만 4년이 되는 2025년 4월 15일 전까지는 올해 내내 ‘만 3년’이다. 이것이 민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부터 적용된 ‘만 나이’ 셈법이다. “입사한 지 2년, 햇수로는 4년째”란 말이 성립하는 것은 만 개념으로는 2년 지났는데 햇수로 따지면 4년째가 됐다는 뜻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