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3대 도시의 존재감을 잃고 추락을 거듭하던 도시 대구가 30년 만에 역사적인 도약의 시대를 맞고 있다. 대구경북의 지도가 바뀌고 경제영토가 확장되면서 역동적인 변화가 대구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국회 통과가 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과 달빛철도특별법을 특유의 정치력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킨 홍준표 대구시장은 하늘길과 철길을 열면서 남부 거대경제권의 출발을 알렸다. 광주와 맺은 하늘길 동맹, 철길 동맹은 산업동맹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대구를 짓눌러온 패배주의 그림자가 걷히고 새로운 대구 50년에 대한 기대감이 움트고 있다. ‘파워풀 대구’, ‘대구굴기’를 표방하며 민선 8기 대구호를 맡은 홍 시장이 혁신에 나선 지 1년8개월 만에 나타난 변화다.
2006년 3월 한 월간지는 ‘대구 성장이 멈춘 절망의 도시, 순환 경쟁 비판이 없는 동종교배의 도시’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근거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1999년 이후 단 한 번도 최하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낙후된 경제와 산업, 그리고 한 번도 정치적 지형이 바뀐 적이 없는 보수성과 폐쇄성이 대구를 망령처럼 떠돌던 시대였다. 1995년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와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등 대형 재난은 추락하는 대구를 더 어두운 도시로 채색했다. ‘대구의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이었다. 한 번 내리막길에 선 도시가 부활의 모멘텀을 찾기까지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구는 2023년까지 여전히 1인당 GRDP 전국 꼴찌의 멍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밀양 신공항을 추진하며 기대를 걸었던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되면서 2016년 대구는 또 한 번 좌절했다. 이후 K2군공항과 대구공항을 동시에 이전하는 대구경북통합신공항 건설이 추진됐다. 이전지 선정 과정에서 엄청난 산고를 겪었다. 천신만고 끝에 군위군 대구 편입 등의 조건으로 이전지가 군위와 의성으로 극적 타결됐지만 기부대양여라는 사업 방식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민항을 포함해 14조원대 사업을 대구라는 자치단체가 감당할 수 있느냐, 사업자가 나설 것이냐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지난해 신공항특별법이 통관된 후 홍 시장과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리산휴게소에서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광주군공항 이전 특별법 동시 통과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를 갖고 달빛철도 건설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달빛철도특별법 통과를 자신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업비만 4조~6조원에 달하지만, 경제성이 낮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의안 발의자로 지역 국회의원들도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야 의원 261명이 공동 발의한 달빛철도법도 올해 1월 말 통과됐다.
실타래처럼 얽힌 대구의 문제를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하는 홍 시장의 정치적 돌파력은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대구를 바꾸고 있다.
정장수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두 개의 특별법이 통과된 배경에 대해 “법안 통과 전(全) 과정을 미리 내다보고 추진한 홍 시장의 혜안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두 개의 특별법은 여소야대 국면에서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대표 발의자의 위상을 최고인 여당 원내대표로 했고,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광주 정치권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발의 초기부터 동참시켰다”고 분석했다.
TK신공항과 달빛철도는 수도권의 포퓰리즘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신공항의 물류, 여객 수요를 확보해 신공항과 달빛철도 경제성을 서로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또 남부 경제권이 부상하면서 홍 시장의 취임 일성이었던 ‘대한민국 산업재편’과 ‘국토균형발전’도 한층 설득력을 갖게 됐다.
일본 전문가인 김종식 디자인정책연구원장은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수도권 집중이 오히려 심화한 것은 공항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수도권에만 계속 확충된 탓”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일본의 공항과 철도도 과잉 지적이 있었지만 요즘 이런 SOC 덕분에 일본은 전국 곳곳이 관광도시로 발전하며 세계 관광시장에서 6위, 아시아 1위로 올라섰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과제도 만만찮다. 대구정책연구원은 대구굴기를 위한 과제로 대구 미래 신산업별 경쟁력 강화, 주요 10대 기업 유치, 대구발 국토 다극화 계획 수립 등이 요구된다며 중앙정부, 의회, 산학연관, 시민의 역대급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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