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이진호 기자/남현우 대학생기자] 다른 생명을 위해 평생을 피만 뽑히다 생을 마감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공혈견이다. 공혈견이란 반려견 수혈용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사육되는 존재를 말한다.
공혈(供血)과 헌혈(獻血)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 쓰이는 단어인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존재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피를 뽑아 주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공혈견에게 쓰이는 ‘공혈’은 자발적인 수혈이 아닌 오직 혈액 공급을 목적으로 길러져 혈액을 착취당하는 것이다. 공혈견은 다른 생명을 위해 희생하지만 결국 공혈견에게 돌아오는 것은 보상과 훈장이 아닌 죽음이다.
철창에 갇혀 혈액을 착취당하며 사는 공혈견
동물권단체 ‘케어’는 2015년 국내 반려견 혈액 공급 대부분을 담당하는 한국동물혈액은행의 공혈견 관리 실태를 폭로했다. 당시 ‘케어’가 공개한 영상에는 좁은 철창에 갇힌 약 300여마리의 공혈견들이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케어는 “한국동물혈액은행에는 수의사가 상주하지 않은 상태이며 채혈 또한 시멘트 바닥과 뜬 창에서 진행되는 상황이다. 혈액은행 측은 모든 것을 함구한 채,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헌혈견협회 강부성 대표는 “공혈견이 혈액을 얼마나 뽑는지는 모른다”며 “공혈견이 혈액을 얼마나 뽑는지는 공개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만큼 한국동물혈액은행은 여전히 공혈견에 관한 사실을 모두 비공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열악한 공혈견의 처우 ... 반려견 헌혈을 통해 해결할 순 있지만 “아직은 한계”
공혈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형견의 헌혈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형견이 헌혈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모된다. 이에 대부분의 병원은 혈액을 구매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혈액은행에서 혈액을 사서 쓰는 것이 현실이다. 강 대표는 “대형견이 헌혈하려면 2~3시간 정도 걸리고 3~4명의 의료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병원은 피를 그냥 사서 가져오는 게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헌혈견 캠페인을 모든 병원이 할 수 없는 이유”라고 답했다. 덧붙여 강 대표는 “한국헌혈견협회에서 시행하는 헌혈은 정기 헌혈과 긴급 헌혈을 다 해도 한 달에 30여건 내외이다. 이는 매우 부족한 수치인만큼 반려동물 헌혈 지원센터를 만들어 헌혈견이 언제나 원하는 시간에 와서 헌혈할 수 있게끔 한 후 저장해 둔 혈액을 병원들에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아시아 최초 반려동물 헌혈센터’ KU 아임도그너 헌혈센터
안정적인 혈액 확보를 위해선 헌혈 지원센터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는 2022년 8월에 개소한 아시아 최초의 반려견 헌혈센터다.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는 아임도그너 캠페인을 바탕으로 반려동물 헌혈 문화 정착 및 확산을 넘어 전국적인 수의 혈액망을 구축하고 성분 제제를 이용한 연구 및 박차를 가하고자 건립되었다. 아임도그너 캠페인은 2019년 현대자동차와 건국대학교의 협업으로 시작된 캠페인으로 반려동물 헌혈 문화 조성 및 확산과 올바른 헌혈문화의 정착을 통해 반려동물의 행복하고 건강한 생애를 응원하고 있다.
아임도그너 캠페인과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는 반려동물 헌혈문화를 선도하고 전국적으로 정착시킴으로써 수혈용으로 사육되는 공혈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혈견의존도를 줄인다면 전국적으로 건강하고 윤리적인 헌혈 혈액을 공급할 수 있고 동물 윤리도 회복할 수 있다.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에 따르면 헌혈센터 개소 이후 헌혈에 참여해 준 헌혈견들은 약 300여마리이며 헌혈 신청 건수가 2022년 대비 2023년에 2배 가까이 증가했을 정도로 많은 헌혈견들이 참여해 현재는 반려동물 헌혈의 허브로 자리매김하였다.
공혈견의 비윤리적 문제뿐만 아니라 수혈견의 건강을 위해서도 헌혈센터를 통한 반려견 헌혈이 필요하다. 혈액을 공급하는 공혈견의 건강과 위생이 좋지 못하다면 이를 수혈 받는 수혈견의 건강도 악화될 수 있는 것이다. 최희재 KU아임도그너 헌혈센터 책임 수의사에 따르면 “채혈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공혈견의 윤리적 문제와 사육 환경의 위생관리, 사육 중인 공혈견의 건강 및 영양 관리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점이 있다”며 “위생, 건강 상태가 보장되지 않는 혈액 제제는 결국 수혈견에도 잠재적인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 응급 상황이나 수술, 치료에 있어 혈액 수급은 필수적이다. 혈액의 재고가 부족하거나 헌혈견이 구해지지 않을 때는 여전히 공혈견의 혈액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수의사는 “환견을 치료해야 하는 입장에서 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환자가 있는데 헌혈견이 구해지지 않을 때, 혈액제제 재고가 없을 때 공혈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는 딜레마가 있다”고 토로했다. 공혈견 사육이 비윤리적이더라도 당장 공혈견을 없애지는 못하는 이유이다.
이에 최 수의사는 “반려견 헌혈문화 확산을 위해서 각 지역에 헌혈센터가설립되어야 한다. 헌혈센터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혈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혈액제제를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반려동물 헌혈을 통한 혈액 공급으로 공혈견이 완전히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며 윤리적인 헌혈 혈액 공급과 반려견 헌혈 문화 확산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大犬(대견)한 히어로’ ... 대견 히어로 캠페인
윤리적인 혈액 공급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반려견 헌혈 문화가 확산되어야 하지만, ‘반려견 헌혈’ 문화는 사람들에게 아직 낯선 개념이다. 반려견 헌혈에 관한 친숙함과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려견 헌혈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수단이 필요하다.
‘대견 히어로’ 캠페인은 대형견 헌혈 문화를 확산시켜 공혈견의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대학생 연합 광고동아리 애드레날린의 PR부가 기획한 캠페인이다. 애드레날린 PR부는 ‘대견한 히어로 공개 채용’ 옥외광고 시행을 위해 펀딩, 굿즈 디자인, 프로젝트 홍보 등 모든 과정을 구성원들 간 협동을 통해 직접 진행하였다. ‘대견 히어로’ 프로젝트는 반려견 수혈의 90%를 담당했던 공혈견을 반려견을 살리는 1세대 히어로라고 지칭하고 세대교체를 위한 2세대 히어로, 대견(大犬) 히어로를 모집하여 공혈견의 수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견 히어로’ 프로젝트는 옥외광고 펀딩에 성공하여 서울숲 인근 버스정류장(뚝도아리수정수센터수도박물관 04-176)에서 2월 19일부터 3월 5일까지 15일간 집행되었다. 애드레날린 PR부 헤드 송하은 씨는 “대견 히어로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반려견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이 접할 수 있고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숲으로 장소를 선정하게 되었다”며 “버스정류장 광고가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견주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에게 접근성이 좋을 것이라 생각해 버스정류장 광고를 집행하였다”고 말했다.
덧붙여 송 씨는 “애드레날린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더 많은 이들을 위한, 더 깊은 내용을 담는 광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궁극적으로 반려견의 생명을 살리고 있지만, 고통받으며 살고 있는 공혈견의 수를 대형견 헌혈문화 확산을 통해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 우리의 메시지가 더 많은 반려견주 분들에게 닿게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공혈견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자발적으로 헌혈을 해주는 대형견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헌혈을 해주는 반려견이 늘어나야지만 공혈견 수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반려견 헌혈 문화 캠페인이 확산되려면 헌혈견한테 우대를 많이 해주어야 한다. 헌혈견에게 혜택을 줌으로써 안전하게 헌혈하고 헌혈견이 한 번이라도 더 헌혈에 참여할 수 있게끔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반려견 헌혈이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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