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과대학 교수들이 25일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시간 축소에 들어갔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의 유연한 처리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는 등 정부가 대화의 손을 내밀었지만 사실상 이를 거부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의료 현장 ‘최후의 보루’인 의대 교수마저 환자를 위해 갈등 해소에 나서기보다 ‘밥그릇 지키기’에 동조하는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2000명의 의대 증원과 정원 배정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 대화의 전제 조건”이라며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과 주 52시간 근무는 예정대로 오늘(25일)부터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 20일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확정한 2000명 증원 결정을 철회해야만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앞서 22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도한 사직 결의 성명에는 서울대, 연세대 등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여기에 3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의교협까지 이날 집단 사직 강행에 나서면서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은 40개 의대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의교협은 교수들의 자발적 사직임을 강조했지만 이날 가장 먼저 사직서 제출에 나선 고려대 의대 교수들은 강당에 모여 공개적으로 사직서를 수거함에 넣었다. 일각에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교수라도 제 의견을 낼 수 없게 압박하는 방식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공의 처벌을 유예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교수들의 사직 명분은 사라진 것”이라며 “이미 정부가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의료계가 요구해 온 다수의 개혁을 약속했는데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것은 의사 집단의 이기주의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 회동을 하고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달라”고 내각에 지시했다. 의료계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연일 대화의 손짓…의대 교수들은 '줄사표'
전국 40개 의대 중 39개가 참여하는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은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2000명 의대 정원 확대 및 정원 배정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1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교수들이 사직서를 냈다고 당장 병원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교수들이 주 52시간 근무에 이어 다음달부터는 외래 진료 최소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의료 공백은 한층 커질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에 노력하겠지만 의료개혁의 핵심 축인 의대 증원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 장관은 26일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의료계 관계자들을 만나 의과대학 증원을 포함한 정부의 의료 개혁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보완책을 협의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 협의체를 구성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서울대가 주축이 돼 의료계 측 참석자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도 이날 정부와 의료계가 대화할 가능성이 생긴 것에 대해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의료계)도 그동안 입장이 있을 것 아닌가. 한 단체가 아니라 다양한 단체가 있다”며 “의사 선생님들께 시간이 좀 필요한 면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총리실을 중심으로 대화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총리실은 전의교협을 비롯해 이른바 ‘빅5’ 병원 등 모든 관련 단체와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의정 대화 협의체가 가동되면 미복귀 전공의 면허정지 행정처분 유예 또는 백지화,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계 지원책 등 구체적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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