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무대에서 활약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40)에게는 특별한 루틴이 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무대 뒤에서 20여 분간 요가 매트를 펼치고 간단한 요가 동작과 스트레칭을 하는 것. 떠들썩한 뒤풀이나 술을 마시는 대신 긴장을 풀고,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전화로 만난 윤소영은 이렇게 말했다. "4년 전부터 악기뿐 아니라 요가 매트도 연주의 필수품이 됐어요. 스스로를 철저히 관리하면서 (연주를) 무사히 마치면 정말 기쁘거든요."
윤소영은 벌써 데뷔 34년 차 바이올리니스트다.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소영 역시 십수년 전에는 콩쿠르 스타로 주목 받았다. 예후디 메뉴힌 콩쿠르,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를 비롯한 주요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제는 연주자로서 가장 정력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롯데콘서트홀 인하우스 아티스트(상주음악가)로 선정돼 한국에서도 수 차례 무대에 섰다. 올해도 지난 1월부터 독일에서 12차례 리사이틀 투어를 하고, 이달 28일 예정된 한경아르떼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위해 한국으로 입국했다. "연주 투어가 잡히면 매일같이 4시간 이상 연습하고, 차로 이동하며 한 두 달을 보내요. 도로 위에서 400㎞씩 보낼 때도 있죠. 몸과 마음 건강에 신경쓰기 시작한 이유에요. "
그의 말대로 대다수의 연주자들이 '부상과의 전쟁'을 치른다.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손가락 부상으로 해외 연주 일정을 줄줄이 취소했고,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랑랑, '현의 거장' 막심 벤게로프 등 수많은 최정상급 연주자들도 부상을 피해가지 못했다. 윤소영 또한 몇 년 전 팔의 극심한 통증으로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으며 협연을 겨우 마무리한 경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겁이 나더라고요. 팔이 아프면 연습을 덜 해야할 것 같고, 그러면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더 커지니까요. 그래서 요즘 동료 연주자들 만나면 '어디 아파?'라고 묻는 대신 '어떻게 관리해?'라고 물어요. 몸 관리도 연주의 일부니까요."
이달 28일 한경아르떼필과 들려줄 곡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대표 레퍼토리이자 기교와 음악 측면에서 모두 까다로운 대곡이다. 윤소영은 "매우 좋아하는 곡이지만 할 때마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곡"이라며 "바이올리니스트를 희망했던 시벨리우스 조차 자기가 쓴 써놓고 연주하지 못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연주자에게 도전적인 레퍼토리"라고 설명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특히 3악장이 기교적으로 난해하기로 유명하고, 특유의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두 가지 극단적 분위기를 잘 나타내줘야 하는 곡이다. 수많은 거장들이 이 곡을 연주해왔다. 윤소영의 시벨리우스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있는 그대로 잘 표현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아주 차갑게 시작하는 첫 부분과, 2악장 포근하고 따뜻해지는 중간 부분. 그런 시벨리우스 고유의 아름다움을요."
한경아르떼필과 호흡을 맞추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휘는 이전에도 몇 차례 호흡한 적 있는 이병욱과 함께한다. 윤소영은 "(한경아르떼필 연주를) 유튜브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말러 2번을 연주한 것도 봤는데 매우 젊고 열정이 많은 오케스트라"라며 "이병욱 선생님도 매우 존경하는 분이라 벌써 연주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프로 연주자로 매년 수십차례의 공연을 소화하는 윤소영의 화두는 멘탈 강화다.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얘기다. "음악가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기 시작하면 무너져요. 어릴 때는 이런 게 심했고, 성숙한 음악가가 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들과 싸우고 있어요. 테크닉적으로 어렵고, 연주가 힘들고 이런 건 문제가 안됐어요. 정신적으로 단단하고 강해지는 게 필요했죠. "
매번 무대에 최선을 다하려는 열정, 발전하고 싶은 의지는 때로 지나친 긴장과 불필요한 감정 기복을 만들어내기도 했다고. 그는 자신을 "무대에서 많이 긴장하는 축에 속하는 연주자"라고 했다. "다들 즐기라고 조언해요. 연주는 행복한 일이라고. 굉장히 쉬운 얘기같은데 막상 마음이 잘 안 따라와요. 그래서 가끔 정신적으로 무너지기도 하죠. 근데 생각해보면 이 모든게 설레서 그런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더 잘하고 싶고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욕심이 따라오니까 무대에서 떠는 것 같아요. "
누구보다 음악에 진심인 연주인 윤소영은 이제 점차 그런 '긴장'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틈날 때마다 명상과 스트레칭을 즐기고, 유튜브에서 강아지 영상 등을 찾아보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도 그 일환이다.
"무대가 아주 조금씩은 편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조금씩요.(웃음) 10년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어요. 이제는 이런 면을 더 활용해서 본격적으로 저만의 색을 지닌 연주자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해요. 열정이 많고,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연주자, 그런 말을 듣고싶어요. "
최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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