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일본인의 약 절반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꽃가루 알레르기’ 시즌이 돌아왔다. 이 알레르기 탓에 노동생산성이 하락, 하루 2340억엔(약 2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있을 만큼 일본에선 치명적이다. 한국인 관광객 역시 준비 없이 방문했다간 관광 내내 눈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꽃가루에 노출되는 기간이 긴 ‘고위험 지역’에 사는 인구가 갈수록 늘면서 꽃가루 알레르기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봄철 꽃가루를 흩날리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등 인공림이 들어선 지역이 대거 수도권 베드타운으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 국토 면적의 20%가 삼나무와 편백나무 인공림이다.
최근 도쿄에선 코로나 앤데믹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있다. ‘철이 드니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더라’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로 환자가 많다. 한 20대 학생은 “마스크와 항알레르기제로 견디고 있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최근 도쿄를 찾은 직장인 신모 씨는 “눈이 계속 따가워 주변에 물어보니 알레르기라고 했다”며 “눈을 씻는 안약으로 버텼다”고 전했다. 안경을 쓰는 사람의 경우 아예 고글처럼 눈을 보호하는 테까지 쓰기도 한다.
도쿄 하치오지 지역은 풍부한 녹지와 도심 접근성 덕분에 인기 있는 주택지다. 현지 부동산 정보지 ‘살고 싶은 거리’ 랭킹에서도 상위권이다. 문제는 삼나무나 편백나무가 많다는 것. 기상 회사 웨더뉴스의 꽃가루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이 지역은 1년 중 약 40일에 걸쳐 꽃가루가 대량으로 날린다.
이는 일본 전역으로 확산한 모습이다. 1980년 이후 꽃가루 시즌이 20~29일인 지역은 594만명, 30일 이상 지역은 136만명 늘어 모두 730만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약 1700개 지자체를 꽃가루 시즌 길이를 기준으로 분류한 뒤 인구 추이를 조사한 결과다.
반면 꽃가루 시즌이 짧은 지역에선 인구가 많이 늘지 않았다. 삼나무나 편백나무가 적은 홋카이도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전체 인구는 1980년부터 40년간 900만명 늘었지만, 증가 인구의 80%는 꽃가루 고위험 지역에 집중됐다.
꽃가루에 노출되는 사람이 늘면서 일본에선 꽃가루 알레르기가 경제 문제로 비화했다. 꽃가루 알레르기로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면서 하루 2340억엔(약 2조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내 꽃가루 알레르기 치료법을 다루는 문헌이 증가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고도 경제 성장기에 심은 삼나무가 꽃가루를 활발하게 날리는 수령 30년 이상을 맞이한 시기와 일치한다. 삼나무가 늘어나는 주택 수요 등에 쓰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저가의 수입 목재에 밀려 벌채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 영향도 있다. 1990년대까지 삼나무 꽃가루 시즌 개시는 2월 하순이었지만, 2020년대에는 2월 상·중순으로 2주 정도 빨라졌다. 3월 하순부터는 편백나무 꽃가루가 날린다. 삼나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의 70%는 편백나무 꽃가루 알레르기도 겪는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30년 뒤 꽃가루 양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인공림 대부분이 민간 보유지여서 행정만으로 벌채나 옮겨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