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업계에 라이선스 브랜드 바람이 분 것은 2010년대 중반이었다. 연 매출 1000억원 브랜드가 속출했다. 더네이쳐홀딩스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에스제이그룹의 캉골, 감성코퍼레이션의 스노우피크 등이 대표적이다. F&F가 MLB와 디스커버리로 ‘대박’을 터뜨린 직후였다.
“브랜드만 잘 잡으면 100억원은 그냥 번다”는 말이 패션업계에 파다했다. 코웰패션은 푸마, 아디다스 등의 브랜드를 가져와 속옷에 붙여 팔았는데 TV홈쇼핑에서 수백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라이선스 브랜드 전성시대는 그러나 작년 하반기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박 신화의 주역 F&F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F&F차이나는 중국 내 MLB 유통을 담당한다. 2019년 중국에 진출한 F&F는 매장을 1200여 개까지 늘리며 단숨에 중국 내 패션 브랜드 ‘톱10’에 들었다. MLB의 중국 매출(홍콩 포함)은 작년 기준 9000억원에 육박한다. 국내 매출 감소를 중국이 상쇄해줬는데, 중국마저 꺾인 것이다. 이 탓에 F&F는 작년 매출 2조원 달성에 실패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F&F가 ‘어닝 쇼크’를 냈다며 목표주가를 줄줄이 내렸다. F&F 주가는 올 들어 약 20% 하락했다.
캉골로 유명한 에스제이그룹의 작년 영업이익은 반토막 났다. 2022년 358억원에서 작년 154억원으로 57% 급감했다. 주력인 캉골에 더해 팬암, 헬렌카민스키 등의 브랜드를 추가로 내놓았으나 매출은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푸마, 아디다스 등의 브랜드 속옷 라이선스 사업을 하는 코웰패션 역시 작년 영업이익이 11% 줄었다.
과도한 유행은 일부 소비자의 거부감으로 이어졌다는 게 패션업계의 진단이다. MLB가 성공하자 NBA(수입자 한세엠케이), NFL(더네이쳐홀딩스), FIFA(코웰패션)를 붙인 라이선스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 같은 스포츠 로고의 범람이 MLB 매출에도 악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올드머니(Old Money)룩’이 유행한 영향도 있다. 올드머니룩은 대를 잇는 부자들이 입는 패션 스타일을 뜻한다. 로고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게 특징이다. 2010년대 패션업계를 강타한 ‘로고 플레이’(브랜드를 크게 드러내는 것), 옛 브랜드를 찾아내 다시 재해석한 ‘뉴트로’ 열풍 등이 맞물려 라이선스 브랜드가 각광받았는데 최근 패션 트렌드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안재광/오형주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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