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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초부터 어제까지 2023년 회계연도 연간 사업보고서에 대해 정정공시를 낸 주요 상장사 명단 중 일부다.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간 보고서 내용을 바꾸려는 사유로 ‘XBRL(확장 XBRL)’을 꼽았다는 점이다.
기업이 결산 내용 갱신 등에 따라 공시 일부를 정정하는 사례가 매년 있긴 하지만, 이처럼 특정 사유 하나를 두고 정정공시가 쏟아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XBRL은 기업이 재무정보를 전산언어로 입력해 공시하는 체계를 뜻한다. 재무공시 각 항목에 대해 분류체계(택소노미)를 적용해 전산 식별코드(태그)를 붙여 입력해야 한다. 기업이 전자공시 시스템에 PDF 문서나 JPG 이미지를 첨부하고, 주요 수치만을 DART 시스템에 입력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과정이 복잡하다.
재무제표 본문에 대해선 작년부터 XBRL 적용이 의무화됐지만, 기업별 내용이 크게 들쭉날쭉한 주석에까지 적용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혼란이 커졌다는 게 재계와 회계업계의 중론이다.
XBRL과 관련해 사업보고서 정정공시를 내는 기업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12월말 결산 상장사는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이 다음달 1일까지라서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XBRL 관련해 정정 공시를 이미 냈거나 앞으로 내야 할 기업이 적어도 30여곳은 될 것"이라며 "당국에서 이달 말까지는 XBRL 주석 공시를 문제없이 제출하라는 사실상의 '행정지도'를 한 터라 일부 기업은 아직 정정공시 작업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XBRL을 도입하는 과정엔 기본적으로 품이 많이 든다. 수치를 전산 데이터로 입력하려면 재무 정보마다 어떤 태그를 붙여야 할지 일일이 분류하는 '태깅' 작업이 필요해서다. 국제 XBRL협회에 따르면 기업 규모와 구조 등에 따라 이같은 과정이 통상 600~1500항목에 대해 이뤄진다.
이들 항목을 단순 기준에 따라 자동화해 분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이 회계·법 제도와 함께 경영전략적 측면을 따져 분류법을 정해야 한다. 기업 회계 담당자들이 골머리를 앓은 것도 여기부터다.
익명을 요구한 A기업 관계자는 “주석은 각 기업의 업종 분야나 사업구조 등 특징에 따라 천차만별인 계정이 많다”며 “금감원의 XBRL 작성기를 통해 태그를 붙이자니 적절한 표준 계정과목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기업이 일부 임의로 계정과목을 만들 수 있지만 이또한 프로그램의 제약을 받는 구조”라며 “표준계정과목 사용률을 따져 사용률 90% 이상에만 '적합'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당국이 XBRL 주석 적용 사례 모음집이나 주석 공시 형식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하지도 않았다”며 “‘기업에서 일단 (공시를) 올려보고 당국의 피드백을 받아 정정공시를 하라’는 식인데, 일단 정정공시가 나가면 기업 경영진은 실무자의 잘못이라고 보기 십상이니 실무자만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금감원이 배포한 XBRL 작성기에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 금감원은 작년 하반기부터 XBRL 작성기를 배포하고 이달 초 주요 업데이트를 대거 내놨다.
B기업 관계자는 "수치를 수정할 경우에 연동되지 않아야 할 다른 항목 내용까지 바뀌거나, 산식 검증을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값을 주는 등 곳곳에서 오류가 나 공시 작성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그는 "자사가 XBRL 주석 작성 용역을 준 회계법인조차 오류를 잡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며 "프로그램의 산식검증 기능이 사실상 유명무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C기업의 관계자는 "XBRL 작성기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느리고 오류가 많다"며 "주요 ERP(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문서와도 연동이 잘 되지 않아 그야말로 '인력을 갈아넣어' 공시를 올렸다"고 했다.
기존엔 투자자가 이차전지 분야 주요 기업들의 성장세를 분석하기 위해 개별 기업의 공시 PDF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고 자료를 따로 취합해야 했다면, XBRL 적용 후엔 DART 사이트 등을 통해 각 사의 주요 재무정보 추이를 바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재무정보 분류를 세세히 하면 투자자들의 기업 분석도 고도화할 수 있다. 기존엔 문장으로만 서술했던 항목도 수치화한 재무정보로 나타낼 수 있다. 금감원은 이달 초 주석 XBRL 공시 적용 대상 기업에 우발부채 항목에 대한 세부 태깅 작업을 요구하기도 했다.
외국인투자자의 정보 접근성도 그만큼 커진다. 투자자 입장에선 기업을 손쉽게 비교분석할 수 있고, 기업은 투자금을 끌 여지가 기존보다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XBRL 확산을 내세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정공시를 비롯한 '정보 오류'가 빗발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게 기업과 회계업계의 지적이다. D회계법인 관계자는 “이번엔 인력과 체계를 갖춘 대기업이 회계법인과 협업을 하고도 정정공시를 내는 일이 잇따랐다”며 “이대로라면 주석 XBRL 공시 의무가 확대될 전망인 내년에 더 큰 혼란이 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년부터는 자산 5000억원 이상, 2조원 미만 상장사에 대해서도 2024년 기말 사업보고서에 대한 XBRL 주석 공시 의무가 적용된다. 당국은 자산 5000억원 미만 상장사에 대해선 2025년 기말 사업보고서부터 XBRL 주석 공시를 의무화할 전망이다.
올해 XBRL 주석 공시를 작성한 E 기업의 관계자는 “회계·공시 담당 인력이 적은 중견·중소 상장사가 XBRL 주석 공시를 작성해야 한다면 상당한 부담과 시행착오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당국의 시스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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