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열린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는 ‘사업 재검토’였다. 두둑했던 주머니가 홀쭉해진 만큼 그동안 공격적으로 벌여온 수많은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점검하겠다는 얘기다. 그렇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미래 핵심 성장동력인 배터리 셀 등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SK온은 공장 설립 및 연구개발(R&D) 등에 지난해 7조원을 투입한 데 이어 올해도 7조5000억원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배터리 소재 분야에도 수천억원씩 투자하는 건 그룹 차원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SK넥실리스와 SKIET는 지난해 각각 8000억원과 4940억원을 시설투자 등에 썼다.
SK는 이르면 다음달 건네받을 맥킨지 보고서와 SK이노베이션 및 9개 자회사에 설치한 ‘경쟁력강화 태스크포스(TF)’의 제안 등을 토대로 사업 재편 방향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일부 자회사 지분 매각과 희망퇴직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분 매각 대상 기업으로는 SKIET와 현금 흐름이 좋은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SK이노베이션과 중국 배터리 기업 EVE에너지의 합작법인 등이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 수뇌부는 과감한 사업 재편을 주문하고 있지만, 사업 전망이 좋은 회사가 많은 만큼 실제 계열사 매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SK그룹 주요 계열사가 예정돼 있던 투자를 보류한 것도 사업 재편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IET가 그랬다. 올 상반기로 잡았던 북미공장 신설 계획을 오는 11월 이후로 늦췄다. 투자 전문 지주회사인 SK㈜는 올해 신규 투자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 SK그룹은 배터리 사업과 함께 바이오, 반도체 등 주요 사업의 타당성 검토에도 나서고 있다. 또 다른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통해 바이오 사업 진단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자 금융당국도 SK 계열사의 재무구조 점검에 나섰다. SK 계열사의 ‘장부 외 부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부 외 부채는 사모펀드(PEF) 및 주요 금융회사로부터 상장을 조건으로 지분을 파는 프리IPO와 상환전환우선주(RCPS)·전환우선주(CPS) 등을 뜻한다. 장부 외 부채는 회계상 부채가 아니라 자본으로 잡혀 부채비율을 높이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SK그룹이 SK온에 투자한 기관에 투자금에다 이자까지 얹어서 되사겠다는 콜옵션 조항을 보장한 터라, SK그룹이 투자금을 되돌려주면 그동안 잡히지 않았던 ‘숨은 부채’가 대거 늘어날 것이란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SK그룹의 전반적인 재무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사업구조 재편 작업이 마무리되고 올 하반기 배터리 업황이 살아나면 SK 주요 계열사의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SK 관계자는 “사업 재편 방안은 포트폴리오 점검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김우섭/김형규/차준호 기자 duter@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