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러포즈에 성공하려면 민트색 상자를 내밀어라'는 유명한 속설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TIFANNY & CO)'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출연한 배우 오드리 헵번이 뉴욕 5번가 티파니 본점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매장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지금의 티파니를 알게 해준 계기가 됐습니다.
그런데 티파니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건, 고유의 색상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전 세계 연인들을 설레게 한 색'이라는 수식어가 생겼을까요. 오늘은 독보적인 브랜드 컬러로 '프러포즈 반지의 대명사'이자, 색을 브랜드의 상징으로 만들어낸 티파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 있어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디자인 요소는 '컬러'입니다. 가장 먼저 소비자들의 시각을 자극하는 브랜드 컬러는 로고부터 브랜드 스타일, 이미지 전부를 확립시키는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엄청 많은 수의 색을 보는데, 어떤 색을 봤을 때 그 색의 이름을 안다면 더 쉽게 기억하고 알아볼 것입니다. 티파니는 시그니처 컬러에 이름까지 붙여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한 대표적 예시로 손꼽힙니다.
'민트색 하면 티파니앤코'라는 말을 만들어 낸 브랜드 컬러의 실제 이름은 '티파니 블루'입니다. 이 색은 특유의 청량한 느낌을 연상시키는데 단순 민트색, 파란색, 청록색이라고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티파니는 왜 이런 색을 선택했을까요. 19세기 후반 다이아몬드 사업을 시작한 티파니는 1845년, 고급스러운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첫 번째 카탈로그 '블루북'을 제작했습니다.
이때, 티파니의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는 카탈로그 겉표지의 색으로 '로빈스 에그'(파란 울 새알을 연상시키는 청록색 계열)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주얼리를 좋아하고 자주 착용한 여성들에게 이 로빈스 에그 컬러가 인식이 좋은 색상이었다는 탓이 컸습니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신부들은 결혼을 기념해 로빈스 에그 색으로 된 장식이나 브로치, 터키석 보석 등을 하객에게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유의 색 하나만으로 시대적 전통과 사람들의 선호도를 관통한 티파니의 도전은 통했습니다. 카탈로그가 공개되자 당대 여성들 사이 '하늘과 푸르른 바다가 연상되는 듯한 밝은 이미지'를 가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제품의 상자와 종이백에 이 색을 넣더니, 보석 중에서도 다이아몬드와 귀금속은 물론, 크리스털이나 도자로 정교하게 디자인된 가정용품들까지 고유의 색을 넣었습니다.
이 색은 많은 여성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키더니, 보석이 아닌 이 색이 담긴 주얼리 상자만을 구매하려는 고객들로 매장이 북새통을 이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브랜드의 정체성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고요, 평화, 번영, 여성미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받으며 디자이너들에게 역사가 깊은 컬러마케팅 성공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탁월한 안목을 가졌던 티파니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색의 강력한 상징성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티파니만의 컬러 상표를 등록한 것입니다. 색 자체에 상표의 기능과 브랜드를 식별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색채 연구소 팬톤(Pantone)은 1988년, 티파니 회사만을 위한 팬톤 컬러 코드 'PMS 1837'을 부여했습니다. 여기에 명시된 번호 '1837'은 티파니의 창립 연도입니다. 그리하여 티파니 블루라는 고유한 푸른색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왜 티파니는 이토록 브랜드 컬러에 고집을 부린 걸까요. 실제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소비자 중 약 85%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느낌(미적 기쁨)'을 줄 때 구매를 결정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품과 관련된 순간적인 판단의 90%가량이 색 하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와 80%의 소비자들은 색이 브랜드 인식률을 높여준다고 여긴다는 조사들도 있습니다. 특히 경제학자 마틴 린드스트롬은 6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티파니 블루를 본 여성들의 심장 박동이 22%나 상승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품은 색이 더 빛을 내는 법. 티파니가 각 색상에 고유한 메시지와 의미가 있다는 걸 일찌감치 파악한 걸까요. 중요한 디자인 요소인 색에 대해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할수록, 강력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확신한 걸까요. 어쩌면 티파니가 '설레는 결혼반지'의 대명사가 된 건, 티파니 블루 덕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티파니 블루를 마주했을 때 스치듯 지나가더라도 느껴지는 순간의 강렬함, 은은하게 스미는 우아함, 품격을 갖춘 고귀함. 여기에 더해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감성과 감정 기분까지 자극하니까요.
좋은 스타일은 명확성과 일관성, 창의성, 확신을 보여주는데, 티파니는 브랜드 컬러 하나로 이 모든 것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컬러 하나가 기업을 단단히 받쳐주는 깊은 유산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색은 사람뿐 아니라 브랜드를 인식하는 방안에도 효과를 미칩니다. 브랜드 제품의 색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 색이 소비자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i>*이번 기사는 'Aesthetic Intelligence'(Pauline Brown 지음), 'What is color?'(Arielle Eckstut, Joann Eckstut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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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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