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명예회장이 지갑에 넣고 다닌 명함만 봐도 알 수 있다. 한일경제협회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태평양경제협의회 국제회장 등 20개에 달한다.
그가 재계의 맏형 역할을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많은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필요성을 처음 공식 제기한 게 바로 조 명예회장이었다. 2000년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자격으로 필요성을 역설했다. 2012년 한·미 FTA 체결을 성사시킨 주역 중 한 명으로 그가 꼽히는 이유다.
조 명예회장은 체결 직전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민간소통 창구 역할을 했다. 정부를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FTA 협상이 진행 중이던 2007년 “정부와 재계가 따로 노는 형국”이라며 “우리 재계가 그간 미국과 일본 등의 재계 인사들과 접촉을 통해 모은 각종 정책과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정부에 보고해도 반영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체결 이후엔 미국 의회를 방문해 한·미 FTA 인준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런 그에게 한·미 FTA 10주년을 맞아 공로패를 수여했다. 조 명예회장은 공로패 수상 당시 “한·미 양국의 재계 대표들이 모인 한미재계회의에서 다양한 통상 현안을 논의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결실이 한·미 FTA”라고 했다.
조 명예회장은 2005~2014년 한일경제협회 회장을 맡아 두 나라 민간기업 간 교류를 넓히는 데도 한몫했다. 한·일 FTA도 그가 한일경제협회 회장을 맡을 때 추진됐다. 한·일 기업 간 다양한 공동비즈니스도 추진했다. 2009년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대수장(旭日大綬章)을 받은 배경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전경련 회장을 맡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경제계 국제교류 활성화 등에 이바지했다. 당시 조 명예회장은 넒은 인맥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전경련을 ‘일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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