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꽃’ 서장? 혜택 사라지고 책임만 늘면서 피하는 자리 됐죠.”
수도권의 한 광역경찰청 참모인 A 총경은 승진한 지 4년이 됐지만, 인사 시즌마다 경찰서장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고위직 승진이 목표인 그는 ‘커리어 관리를 위해 서장을 해야하지만 딱 한 번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A 총경은 “큰 사건·사고가 터지면 서장부터 징계 대상이 된다”며 “서장 하길 꺼리는 정서가 간부 사이에서 퍼졌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일선 서장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서장 보직을 기피하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선 경찰들이 음주운전·폭행 등 잇단 사고를 연달아 치면서 ‘서장이 직원 관리를 똑바로 하지 못한 탓’이라는 책임이 커지고 있어서다. 천재지변 급 대형 사건·사고가 관할 구역에서 발생하면 1차 책임자로 서장을 지목하는 관행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31일 경찰청에 따르면 윤희근 경찰청장은 총선 다음 날인 오는 11일까지 ‘(경찰)의무 위반 근절 특별경보’를 발령한 상태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앞으로 일탈 행위 재발 시 경찰서장 등 관리자에 대해 징계를 포함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에 일선 경찰서에서 경찰관들의 일탈 사고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취해진 조치다.
전국에는 총 259곳의 경찰서가 있다. 보통 총경 계급(전국 639명) 경찰이 서장으로 발령받는다. 13만1046명의 경찰 중 총경 계급을 달지 못하고 정년퇴직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내부에선 경찰서장을 단 총경을 '고위직'으로 본다.
서장은 일반 공무원의 4급 서기관급에 해당한다. 하지만 많게는 약 700명을 통솔하기 때문에 권한은 큰 편이다. 그만큼 대접도 잘 받았다. 선거 사범을 관리 감독하다 보니 지방에선 시장·군수급으로 분류됐다. 사실상 모든 총경이 서장을 희망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서장이 누렸던 권한은 많이 사라졌다. 운전기사와 비서는 사라졌다. 서장의 비공식 의전관 역할을 했던 일선서 정보과는 최근 조직개편 과정에서 대부분이 사라졌다. 몇 년 사이 직원 전용 내부망 ‘현장활력소’ 실명 게시판이 활성화되면서 서장의 권위가 많이 위축됐다.
반면 서장의 책임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7~8월 광주 광산경찰서장, 인천중부경찰서장, 서울 수서경찰서장 등은 직원들의 일탈을 이유로 모두 서장직을 하루아침에 내려놔야 했다. 예전에는 각 부서에서 챙겼던 사건·사고와 112 신고를 이제는 서장이 직접 챙길 만큼 업무량도 급증했다.
서장의 인기가 식자 총경 사이에선 경찰대·중앙경찰학교와 같은 교육기관 근무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서장에 비해 업무량이 적은데다, 무엇보다 책임질 일이 적다는 게 이유다. 지방의 한 총경 B씨는 올 초 희망 발령지 1~5순위를 교육기관으로 적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B씨는 “퇴근 후 술 마시지 말라고 지시하면 ‘갑질한다’고 되려 역공을 받는다”며 “징계를 받으면 퇴직 연금이 깎이는데, 그럴 바엔 맘편한 곳에서 근무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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