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약사인 다이이찌산쿄가 항체약물접합체(ADC)로 세계 의학계를 놀라게 한 것은 2022년이다. ‘암 올림픽’으로 불리는 미국종양학회(ASCO)에서 이 회사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함께 유방암 신약 엔허투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새 치료제 탄생에 수백 명의 의학자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ADC 항암제는 엔허투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강한 독성 탓에 부작용을 관리하지 못해 활용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46년 2차 세계대전에 활용된 화학무기가 항암제로 변신한 뒤 과학자들의 관심은 ‘선택적 독성’이었다.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만 공격해야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ADC는 정확도와 살상력을 하나의 무기에 담았다. 암 수색꾼인 항체에 고리(링커)를 달아 암세포를 죽일 폭탄(약물)을 실어 나른다. ‘항암 유도미사일’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면 고리가 끊어져 폭탄을 투하한다. 잘못 끊어져 혈관 속으로 퍼진 약물은 빠르게 사라져야 한다. 다이이찌산쿄는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약물 반감기를 짧게 설계했다. 암에 투하한 폭탄이 주변부까지 함께 파괴하는 ‘방관자 효과’도 이 회사 ADC만의 특성이다. 와타루 다카사키 다이이찌산쿄 연구개발본부장은 “이런 조합이 강력하고 독창적인 ADC 프로토콜을 만들었다”고 했다.
장기적으론 면역세포를 활용한 치료제에서 답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 킴리아는 혈액암 완치 시대를 열었다. 초기 투여 환자도 10년 넘게 재발 없이 장기 생존하고 있다. 면역 T세포가 암만 찾아 공격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ADC와 유사하다.
동물에서도 힌트를 얻고 있다. 덩치 크고 세포가 많으면 변이가 늘어 암 위험도 증가할 것이란 게 과학계 상식이었다. 하지만 코끼리의 암 사망률은 3%로 사람(22%)보다 낮다. ‘페토의 역설’이다. 차이는 망가진 DNA를 복구하는 ‘TP53’. 사람에겐 한 쌍뿐인 이 유전자를 코끼리는 20쌍 갖고 있다. 유전자 편집을 활용한 암 정복 시도가 이어지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암이 ‘만성질환’처럼 공생하는 방향으로 정복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암의 증식과 전파를 억제하면 기대수명만큼 살 수 있어서다.
도쿄=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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