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선 긋기에는 일리가 있다. 산업 구조를 보면 그렇다. 동유럽의 주요 산업은 농림업. 반면, 헝가리는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를 통해 전자, 자동차, 의약품 제조업을 육성해왔다. 이제는 2차전지에 총력을 기울이며 그야말로 천지개벽 중이다.
헝가리 투자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48억유로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웃돌고, 이웃인 세르비아 GDP의 1/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제 헝가리는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배터리 생산기지다. 발전 과정에서 유럽연합(EU)의 엄격한 인증과 규격, 환경규제를 따른다는 점 또한 동유럽과 구분된다. 다 같은 동유럽으로 묶으면, 헝가리는 서운하다.
그렇다고 헝가리 시장을 체코나 오스트리아와 함께 중부로 묶기엔 어색한 부분이 있다. 헝가리에서는 헝가리만의 문법이 통하기 때문. 우선, 품질보다 가격을 중시한다. 지난해 정부가 나서서 가격 비교 사이트(Arfigyelo)를 개발했고, 식당에서 잔반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앱(munch)도 등장했다. 2022년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EU 28개국 중 20위인 헝가리는 부유한 이웃 국가에 비해 아직은 가격을 따질 수밖에 없다. B2B 거래에서도 가성비는 제1원칙이다. 중부 유럽에서 왔다는 바이어가 가격부터 묻는다면 십중팔구 헝가리인이다.
비즈니스 문화도 독특하다. 마치 중국의 ‘꽌시’처럼 거래처 담당자와 개인적 친분과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관계의 성숙도에 따라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도 된다. 파트너와는 끝까지 함께 간다. 학력과 직급을 매우 중시한다는 특징도 있다. 명함을 교환할 때 자신과 상대의 소위 ‘급’이 맞는지를 살핀다.
헝가리인들은 스스로를 ‘유럽의 섬’이라고 표현한다.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유목민의 후예이기에 주변 국가들과는 뿌리부터 다르다고 믿는다. 하지만 준비된 자는 독특한 시장에서도 기회를 포착하는 법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對) 헝가리 수출액은 약 84억달러로 대(對) 독일 수출의 82%에 달했다. 수년간 한국이 헝가리 최대 투자국이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규모 투자의 영향으로 헝가리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아주 좋다. 우리 기업 제품은 싼 편은 아니지만 품질이 좋아 가성비를 강조해볼 수 있다. 다소 사적이면서 수직적인 비즈니스 문화는 어찌보면 우리와도 닮았다. 이 정도면 적어도 우리에게만큼은 열려있는 나라가 아닐까.
범주화는 편리하지만 섬세하지 못하다. 장사도 결국은 인사(人事)이니, 작은 차이가 성패를 가를 수 있다. 산업 구조의 빠른 변화와 성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헝가리인들의 자긍심은 타오르고 있다.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파악할 줄 아는 수출 탐험가들이 이 섬에 오를 때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