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처음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면서 기준지표로 근원인플레이션율을 사용했다. 근원인플레이션율이란 소비자물가 편제 항목 중에서 작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산물과 국제 원유 가격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 석유류 가격을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다. 근원인플레이션율을 통화정책의 기준지표로 사용한 이유는 통화정책이 기본적으로 수요 변동으로 인한 물가상승에 대응하는 정책이라는 점 때문이다. 수요 과잉으로 물가가 올라가면 금리를 올려 수요를 진정시키고 수요 부족으로 물가가 하락하면 금리를 낮춰 수요를 진작하면서 경제를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의 균형 상태로 유지하고자 함이다.
한국은행은 2019년 이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기 대비)을 통화정책의 기준지표로 설정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2%를 목표로 설정해 중기적 시계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 목표에 근접하도록 통화신용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을 통화정책의 기준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Fed는 18개월 정도의 시계를 갖는 PCE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과 최대 고용을 달성하는 통화정책 기준지표로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물가안정 목표 2%는 단순히 물가안정만이 목표가 아니고 여러 계량분석을 통해 완전고용을 달성하는 수준으로 도출한 물가상승률이다.
그러나 한국의 통화정책 운용 환경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는 하락하지 않는 ‘끈적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4%에 그쳤고 올해도 1%대 성장을 전망하는 외국 투자은행이 상당수다. 그런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에 2.8%로 낮아졌지만, 2월에 다시 3.1%를 기록하며 금리 인하 여건이 어려워지는 모양새다. 금융 면에서도 난리다. 고금리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건설업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급증해 금융 불안까지 야기하고 있다.
지난 2월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즉 근원인플레이션율은 2.6%를 기록하며 지난해 1월 4.8%를 기록한 뒤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물가는 농산물 중에서도 신선식품 가격이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2월 신선과실 가격 상승률이 41.2% 고공행진했다. 신선채소도 12.3%를 기록했다. 농산물과 석유류 물가 상승은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이다.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통화정책으로 제어가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한국의 물가안정 기준지표를 근원인플레이션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완전고용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다시 추정해서 사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통화정책 운용 수단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개시장 운용과 대출제도 외에 금리를 손대지 않고 사용이 가능한 지급준비제도도 경제 상황에 맞게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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