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위의 안심번호 제공 규정은 전화 여론조사를 기준으로 2017년 제정됐다. 문자메시지 등을 통한 여론조사에는 안심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김어준 씨를 비롯한 여러 조사업체에서 모바일웹 조사 방식 가능 여부를 타진했지만 여심위가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다. 여심위 담당자는 “모바일웹 등 문자메시지 조사와 관련해 내부 기준이 없다”고 말했다.
피앰아이는 3대 통신사와 직접 계약해 익명화된 조사 대상 정보를 받는다. 익명화됐지만 연령, 나이, 읍·면·동 등 세부 지역별로 조사 대상자를 추출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여심위가 제공하는 안심번호 대상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여심위는 지난달 19일자 한경·피앰아이 여론조사 보도부터 ‘3대 통신사 가입자를 기반으로 추출한 패널 274만 명’으로 조사 대상을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 역시 통신업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문자메시지 조사 관련 내부 규정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여심위는 해당 안심번호를 통신사에서 넘겨받을 뿐 조사 대상의 거주지 등 구체적인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 피앰아이에 대한 동별 응답자 정보 공개 요구가 이례적인 이유다. 여심위의 ‘안심번호 체제’ 바깥에서 이뤄진 조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피앰아이도 여심위와 마찬가지로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지역 안배가 이뤄지지만, 여심위는 기존 규정에 따라 이를 검증할 별도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 여론조사 업체 대표는 “전화 여론조사 응답률이 떨어지고 신뢰도가 낮아지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여심위가 기존의 틀을 고수하면서 빚어진 문제”라며 “문자메시지 등 새로운 조사 기법을 위한 제도적 체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심위의 제한과 달리 미국과 일본 등에선 상당수 선거 여론조사가 모바일웹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AI&DDP의 윤태일 대표는 “다른 조사 결과와 다르다고 비판하지만 데이터 흐름을 분석하면 한경·피앰아이 조사 결과가 다른 조사보다 여론과 가까웠다”며 “중도층 등 정치에 관심이 적은 이가 많이 참여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신고리원전 공론화조사위원회’에 통계전문위원으로 참가한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도 “전화 조사에선 응답이 저조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시간 제약이 적은 모바일웹 조사는 지지 후보 결정에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쉽게 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다만 스마트폰 이용에 미숙한 70대 이상 고령층의 참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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