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7월(6.3%)에 정점을 찍었다가, 1년 만인 작년 7월 2.3%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여름철 기상 악화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농산물 가격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면서 한 달 만인 작년 8월 3.4%로 오른 후 같은 해 12월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이어갔다. 올 1월 2.8%로 낮아졌지만, 다음 달인 2월 3.1%로 한 달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이번 달에도 3.1% 상승률을 보이며 2개월 연속 3%대 상승 폭을 보였다.
농산물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20.5% 급등하면서 전체 물가를 0.79%포인트 끌어올렸다. 국제유가 상승 영향으로 석유류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1.2% 상승했다. 석유류 가격이 상승한 건 작년 1월(4.8%) 이후 14개월 만이다. 이 때문에 석유류의 전체 물가 기여도는 0.05%포인트로 ‘플러스’로 돌아섰다.
전체 품목 중 가중치가 높은 석유류는 올 초까지 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전체 물가를 끌어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체 물가 기여도는 작년 2월부터 지난 2월까지 ‘마이너스’였는데, 지난달에 13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5% 상승하며, 전월(20.0%)에 이어 급등세를 이어갔다. 상승 폭은 6개월째 두자릿 수를 이어갔다. 신선식품지수 상승률이 6개월 이상 10%를 넘긴 것은 2010년 2월∼2011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신선과실이 40.9%, 신선채소가 11.0% 각각 상승했다. 품목별로는 △사과 (88.2%) △배 (87.8%) △ 귤 (68.4%) △토마토 (36.1%) △파(23.4%) 등의 순이었다.
사과 가격은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 폭이다. 배도 조사가 시작된 1975년 1월 이후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과일 물가는 작황 부진과 지난해 기저효과 등의 영향으로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납품단가 지원 등의 정부 정책효과는 반영됐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8% 올랐다.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10월(4.5%) 정점을 찍은 뒤 올 1월(3.4%)까지 상승 폭이 둔화했지만, 2월(3.7%)에 이어 2개월 연속 상승 폭이 커졌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 상승률은 2.4%로, 전월(2.6%)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2.4%로, 전월(2.5%) 대비 0.1%포인트 하락했다.
최 부총리는 “세계 주요국 물가 흐름을 보면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마지막 단계에서 굴곡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제유가 상승, 기상 여건 악화 등으로 3월 물가 상승세가 확대될 우려가 있었지만 모든 경제주체들의 동참과 정책 노력 등에 힘입어 물가 상승의 고삐는 조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최 부총리는 “다만 국민들께서 느끼는 물가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라며 “‘장보기 무섭다’는 말 한마디를 무겁게 받아들여 2%대 물가가 조속히 안착하도록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먹거리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이달에도 농축산물 정부 할인지원율을 20%에서 30%로 상향하는 등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계속 투입할 계획이다.
직수입 과일 물량도 상반기 5만t 이상으로 확대해 소형 슈퍼마켓에도 시중가보다 20% 저렴하게 공급할 계획이다. 농·축·수산물 유통구조 혁신을 위한 유통구조개선 태스크포스(TF)도 즉시 가동한다. 정부는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활성화를 비롯한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마련해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의 낙관적인 물가 전망이 현실화할 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국제유가다.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83.71달러로, 전날 대비 0.65% 상승했다. 지난해 10월 27일(85.54달러)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높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분쟁과 산유국들의 감산 가능성에 따른 공급 위축에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유가는 미국의 견조한 경기에 수요 압력까지 겹치면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통상 국제유가 상승분은 2~3주가량의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류 물가에 반영된다.
전체 458개 품목 중 가중치가 높은 석유류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경우 전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458개 품목 중 휘발유는 전세, 월세, 휴대전화료에 이어 네 번째로 가중치가 크다. 경유는 일곱 번째, 도시가스는 열두 번째다. 이 때문에 당초 이달 말 일몰 예정인 유류세 인하도 추가 연장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과일 가격이 좀처럼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특히 사과 가격은 오는 7월 말께 햇사과 물량이 공급돼야 가격이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한국은행도 물가가 추세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보면서도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움직임에 따라 당분간 물가 흐름이 매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오전 주재한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생활물가가 높은 오름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물가 전망 경로상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며 “물가 목표 수렴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향후 물가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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