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과정을 보면 시대적 소명과 한참 동떨어져 크게 실망한 유권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기형적 위성정당이 또 출몰했고, 종북·반체제 인사들까지 끌어들이면서 비례대표제가 형해화했다. 상식의 눈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동산 투기, 꼼수와 혐오를 부르는 숱한 저질 막말로 연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미래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담론 경쟁은 찾기 어렵고, 나랏돈을 화수분처럼 여기는 ‘현대판 고무신 선거’가 여전히 판을 친다. 그러니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름도 생소한 38개 정당을 나열한 선거 역사상 최장 51.7㎝의 비례대표 투표용지를 받게 된 것도 무척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마저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정치가 막장이라고 뒤에서 욕만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투표장으로 달려갈 일은 아니다. 중동 정세 악화와 끝 모를 우크라이나전으로 인해 다시 급등하는 원자재 값, 갈수록 도발 수위를 높이는 북한, 인구 절벽, 고갈되는 국민연금 등 켜켜이 쌓인 국가적 난제를 고려하면 유권자의 분별력, 혜안이 더욱 절실하다.
권리와 함께 의무도 제대로 행사해야 진정한 유권자다. 링컨은 “투표의 힘은 탄환보다 강하다”고 했으나 조준 없이 아무렇게나 쏜다면 고철에 불과하다. 선심 공세와 선동, 위선, 엉터리 공약, 극단적 편 가르기에 휘둘리지 않고 누가 나라와 지역 경제를 진짜로 살릴 수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 선택해야 한다. 무엇보다 헌법과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단 한치라도 흔들린다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진다. 4류 정치 오명을 벗게 할 책임은 유권자에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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