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월 상근 활동가 모집을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공개채용 지원자가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그중 적임자도 찾지 못했다. 과거 정국을 막후에서 이끌었던 해당 시민단체는 올초 공채에서 결국 신입 활동가 채용에 실패해 공고를 마감했다.
시민단체들이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원자는 줄어가는 데 처우는 더 나빠지고 있어서다. 사명감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활동가를 키울 수 없다는 자조섞인 분석도 내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같은 '메이저' 단체의 상황도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메이저 시민단체에서 활동중인 A씨는 "10년 전에도 공채 지원자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논술 시험과 '경쟁 토론 면접'을 진행하는 등 누구를 뽑을지 조직적으로 고민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누구라도 지원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사회 의제를 공론화시키며 국가권력과 시장을 감시하는 고유의 역할을 통해 사회의 한 축을 맡아왔다. 이들이 인력난을 겪게 되면 그 기능도 약화할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 상승에 따라 상대적으로 더 낮아진 임금이 '신입 활동가'를 찾기 힘들게 된 이유로 꼽힌다. 공채에서 상근자를 뽑지 못한 B단체 신입 연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실수령 월급이 200만원을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C시민단체에서 최근 상근활동가로 채용됐던 신입 직원이 첫 월급을 타자마자 퇴사를 통보하기도 했다.
기존 활동가들의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사명감만으로 일하기엔 '생활의 무게'를 감당키 어렵다는 것. 최근 한 시민단체에서 활동가로 일을 시작한 D씨는 "단체 활동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뿌듯함에 일하지만, 임금이 적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배 활동가가 로스쿨을 준비하거나 세무사 시험 등의 전문직 자격시험 준비를 하는 경우를 종종봤다"고 전했다.
시민단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로를 택하더라도 기업 등에서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도 활동가들이 직면한 어려움이다. 여론 수렴활동과 입법 촉구, 정부를 상대하는 대관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음에도 정작 기업에선 외면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민단체 경력을 '반골'쯤으로만 생각하는 기업들도 문제, 기업으로 이직하면 '배신자' 취급하는 시민단체 내부 분위기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과거엔 단체에서 나온 이들이 종종 정치권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문이 닫히다시피 했다는 설명이다. D씨는 "지난 정부에서 참여연대 등 메이저 시민단체 활동 경력으로 관가에 진출한 이들은 단체에서 '외부 전문가'로 활동했거나, 이미 이름이 높았던 사람 뿐"이라며 "일선 활동가들에게는 기회가 사라지다시피 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동물보호단체 카라에선 조직문화와 직원 간 임금 격차를 두고 갈등이 벌어져 노동조합이 설립됐고, 이를 주도한 활동가들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다. 카라 상근활동가 E씨는 "노조를 결성하고 불만을 제기했지만 돌아오는 건 징계 처분이었다"고 했다. 카라 내부에선 전진경 대표 취임 후 3년간 44명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들이 역량을 모을 창구가 다양화하면서 기존 단체의 활동 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찬석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시민사회단체의 위기는 여러 내부 문제를 사명감으로만 채우려고 해서 벌어진 문제"라며 "낮은 임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원 마련의 방식과 내부 갈등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이어 "단체들이 시민 후원금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대대적인 기업 후원 캠페인을 하고, 다양한 자체 수익사업을 벌이는데 이를 참고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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