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4일, 미국에 사는 에드거 웰치는 소총을 들고 워싱턴DC에 있는 피자 가게 ‘코멧 핑퐁’에 쳐들어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구세주로 신봉하는 ‘큐어넌’ 음모론자였다. 웰치는 어떤 증거도 없이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비욘세, 레이디 가가, 톰 행크스 등 유명인이 피자집 지하에서 악마를 숭배하는 의식을 펼치고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극악무도한 성도착자를 처단하겠다는 정의로운 마음으로 피자 가게에 들어가 총을 난사했다. 그러나 코멧 핑퐁에는 작은 식자재 창고만 있을 뿐 지하실은 없었다. 당연히 사탄 숭배자나 소아성애자도 없었다.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 빠져들까.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는 그 해답을 찾아 나선다. 책을 쓴 마이클 셔머는 사이비 과학, 미신 등에 맞서는 과학적 회의주의 운동을 펼치고 있는 과학 저술가다. 국내에서도 한국어판으로 발간되는 과학 잡지 ‘스켑틱’을 1991년 창간했다.
음모론은 옛날부터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미국 정부가 관여했다’는 음모론부터 ‘아폴로 우주선은 달에 착륙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UFO의 존재를 숨기고 있다’ ‘9·11 테러는 미국 정부가 벌인 일이다’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음모론을 믿는 자들이 덜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세 가지 모델로 설명한다. 대리 음모주의, 부족 음모주의, 건설적 음모주의다.
대리(proxy) 음모주의란 정부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예컨대 제약회사의 사기와 횡포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기에 코로나19 백신도 믿을 수 없다는 데서 음모론이 생겨난다. 1932년부터 1972년 사이 미국 공중보건국이 매독을 무료로 치료해 준다며 가난한 흑인들을 모집해 실제로는 치료하지 않고 매독이 사람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한 흑역사도 있다.
부족 음모주의는 같은 집단에 속한 구성원에게 충성심을 드러내는 신호로 작용한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힐러리 클린턴과 톰 행크스가 피자 가게에서 비밀리에 아동을 인신매매한다는 얘기를 믿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당연히 아니죠”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지지자들 앞에선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건설적 음모주의는 진화적 역사를 반영한다. 나뭇가지가 뱀이라고 착각하고 도망갔던 조상들은 그렇지 않은 조상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는 그것이 음모론일지라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동 알고리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세 가지 요인에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우리 편 편향, 패턴 만들기 같은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해 음모론이 활개를 치게 된다고 책은 설명한다.
저자는 음모론자들을 일단 대화로 상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기이한 음모론에 빠진 맹신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해법에 낙관하지 않는다. 음모론을 더 퍼뜨리기 좋은 환경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의 논리를 갖춘 과거의 음모론과 달리 요즘 음모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공포를 주입한다. 음모론에 어떻게 맞설지가 중요해진 시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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