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마르셀 뒤샹은 “나는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을 창조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이야기했다. 그에게는 무형의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는 게 예술의 창조였다.
뒤샹은 일반 가게에서 구입한 하얀색 변기를 뒤집어 놓고, 하단에 ‘R. Mutt’라는 무명 작가의 사인과 작품 제목을 쓴 ‘샘’이라는 작업을 1917년 발표했다. 뒤샹은 “평범한 사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작가의 새로운 생각과 목적에 의해 예술품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작업을 ‘개념미술’이라고 칭한다. 작가의 개념적 의지로부터 예술의 물리적 발현이 시작된 것이다.
플럭서스 운동의 리더였던 존 케이지는 1952년 ‘4분 33초’라는 실험 음악을 공연했다. 케이지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바로 퇴장해버렸다. 이후 그는 항의하는 청중에게 “공연장의 연주자와 관객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내 음악”이라고 했다.
이제 예술은 작품, 작가, 대중에 의해 물리적으로 발현하게 됐다. 예술창작에서 대중이 역할을 하게 돼 소위 말하는 상호작용 예술(Interactive art)이 시작됐다.
21세기, 디지털 기술혁명은 사회의 질서와 제도뿐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조차도 바꾸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예술 창작에도 기계의 역할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미디어 아티스트인 호추니엔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아시아 사전’이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온라인의 바다에서 동양과 관련된 이미지들을 AI로 끊임없이 수집해 사전을 만드는 작품이다. 바야흐로 이제 예술은 작품, 작가, 대중뿐만 아니라 기계에 의해서도 물리적으로 발현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했고, 디지털 혁명 시대에는 기계가 글쓰기 등과 같은 지식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AI 기술의 광속 발전으로 감정과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창작력까지 기계가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미래의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인간은 기술에 종속되지 않고, 그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회와 나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그 어떤 두려운 미래에도 ‘인간의 주체성 유지’라는 그 명확한 대의를 상실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일까?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