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4월 14일 “국회가 코로나 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상정·심의해서 통과시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자들에게 미리 신청받으라”고 했다. 21대 총선 하루 전날 국무회의에서의 갑작스러운 지시였다. 당초 정부는 소득 하위 70%에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의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가 이후 당정 협의를 거쳐 모든 국민으로 확대했다. 실제 일반 가구를 대상으로 지원금을 주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13일이었다. 선거철 선심성 포퓰리즘이야 늘 있었지만 시기나 규모(14조3000억원) 면에서 이때만큼 절묘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소위 보수 진영 인사들조차 사적인 자리에서 “100만원을 어디에 쓸까” 물을 정도였으니 선거 막판 부동층 표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 위력은 상당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과반을 훌쩍 넘긴 180석을 차지했다. 거대 여당의 폭주는 그렇게 시작했다. 민주당은 전·월세 시장을 흔들어놓은 임대차 3법, 기업 규제 3법, 노동관계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줄줄이 강행 처리했다. 하나같이 시장 원리와 거리가 멀고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다. 코로나 지원금 추가 지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등으로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가부채는 21대 국회 출범 전인 2019년 말 723조원에서 정권교체 직전인 2021년 말 970조원으로, 2년 새 247조원 급증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는 경쟁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5세부터 무상교육, 부가가치세 경감, 3자녀 이상 대학 등록금 전액 면제 등을 공약했다. 법 통과를 전제로 한 것들이어서 자칫 공수표가 될 수 있는 정책들이다. 4년 전 선거판을 기억하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퍼주기’ 공약에서 절대 뒤지지 않았다. 국민 모두에게 1인당 25만원, 가구당 평균 100만원의 민생 회복 지원금을 주겠다고 했다. 만 17세까지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긴 ‘기본사회 5대 정책’도 제안했다. 소요 예산 규모나 재원 조달 방안은 안중에도 없었다.
후보들의 막말,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도 여지없이 불거졌다. 김준혁 민주당 경기 수원정 후보는 하루가 멀다고 막말 전력이 드러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위안부 피해자, 이화여대생, 유치원 등 대상도 다양하다. 여러 단체가 사퇴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완주 의지를 불태운다. 후보 등록 직전 막말 파문으로 공천이 취소된 여야의 장예찬·정봉주 후보만 바보란 얘기가 나온다.
양문석 민주당 경기 안산갑 후보는 딸 명의 편법 대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양 후보 역시 “사죄한다”면서도 “두고두고 좋은 정치로 갚아나가겠다”고 한다. 후보의 뻔뻔함은 그렇다고 쳐도 지도부까지 손 놓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총선이 하루 남았다. 각종 논란에 휩싸인 후보들은 일단 버티기에 들어간 듯하다. 영화 대사 말마따나 국민을 개, 돼지로 아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제 국민이 심판할 때다. 29년 전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이건희 삼성 선대회장)란 말을 듣고서도 아직 후진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한국 정치를 이번엔 반드시 바꿔야 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