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빛깔 유리 시계가 콘크리트 건물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초침과 분침이 사라진 둥근 원판 위로 색색의 햇살이 지난다. 같은 자리에 서서 바라본 보라색 시계는 그림자를 따라 12시30분을, 청록색 시계는 2시40분을 가리킨다. 몇 걸음 옮기면 그 시간은 과거가 됐다가 미래가 된다. 일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강원 원주시 뮤지엄산은 그렇게 투명한 빛과 물의 공간에서 우주의 빛으로 뒤덮인 찬란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무채색 건축물에 색을 입힌 사람은 ‘불과 돌의 사나이’로 불리는 우고 론디노네(60·사진).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그가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8일 뮤지엄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며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가 만든 강건한 건축물 안에 또 다른 건축을 하는 과정은 즐거운 도전이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영상과 조각, 회화와 설치 등 그의 대표작은 물론 1000여 명의 원주지역 어린이와 협업해 탄생한 2000여 장의 드로잉 등이 전시됐다.
무지개빛 햇살로 시작한 이번 전시는 말 조각 시리즈와 회화 시리즈인 ‘매티턱’으로 이어진다. 푸른 말 조각 11점엔 각각 에게해, 켈트해, 황해, 보퍼트해 등 바다 이름이 붙었다. 미묘한 색의 차이가 말의 몸을 수평으로 나누고 있다. 벽면엔 일몰과 월출의 풍경을 3색으로 그려낸 수채화들이 함께 걸렸다.
“유리를 주조해 만든 이 말들은 하나의 지구입니다. 바다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어요. 반으로 갈린 부분에 빛이 닿으면 환영처럼 보이는데, 아랫부분은 어둡고 윗부분은 밝습니다. 우주 전체를 말 안에 담고 싶었지요.”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인 ‘수녀와 수도승(Nuns and Munks)’ 시리즈는 뮤지엄산 야외 스톤가든에 6점, 자연광이 들어오는 백남준관에 1점 설치됐다. 백남준관엔 4m 높이의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이 시시각각 각도가 바뀌는 햇살을 마주하며 서 있다. 여러 시간대에 찾아 그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천천히 감상하길 권한다.
원주 지역 5~13세 아이들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달’ ‘세상에서 가장 큰 태양’을 그려냈다. 검정 종이엔 달을, 하얀색 종이엔 태양을 그린 것들을 모아 각각의 전시장에 걸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우주에 관한 일기’라고 했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원주=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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