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게 살아온 백세인들은 대부분 흡연·음주율이 낮았고 고혈압 당뇨병 등을 겪으면서도 장수한 사례가 많았다. 또 일을 즐겁게 하면서 단순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등 ‘노년 초월’ 현상도 뚜렷했다.
한재영 전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최근 열린 건강백세포럼에서 이 같은 도시 백세인 60여 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백세인은 2019년 4819명에서 2022년 8469명으로 급증했다. 시골이 아닌, 도시 백세인 연구 발표는 이번이 국내 처음이다. 백세인 중 ‘평생 흡연을 하지 않았다’ ‘평생 음주를 거의 하지 않았다’ 비율은 각각 75%에 달했다. 현재 ‘흡연을 한다’ ‘음주를 한다’는 비율은 각각 10%에 불과했다. 백세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 이상이었다. 만성질환을 겪는 백세인도 많았다. 백세인 중 66.7%가 고혈압을 앓았고 당뇨병(28.9%), 치매(24.4%), 골관절염(17.8%), 골절(13.3%) 등도 많이 앓고 있었다.
한 교수는 “3개 이상 질환을 앓는 백세인이 71%”라며 “병이 있더라도 치료를 잘하면 장수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남 화순에서 만난 105세 김모 할머니는 100세 이후 심장동맥 확장 및 스텐트 시술을 세 번이나 받고도 건강을 회복한 ‘치병장수’의 대표 사례다. 최근 증손자가 결혼해 ‘증증손자’도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장수 비결에 대해 “아들의 사랑 덕분”이라며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나중에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백세인의 공통점 중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존 가치관을 초월하는 노년 초월 현상이다. 노년 초월이란 스웨덴 사회학자 라르스 토른스탐이 주창한 것으로 백세인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치관 변화다. 안민정 전남대 간호학과 교수는 “국내 백세인 20여 명을 면담 조사한 결과, 노년 초월 현상이 또렷이 확인됐다”며 “대부분 ‘부러운 것이 없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했고 자녀 걱정도 없었으며 삶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들은 '오늘 친구를 만나서 좋았고 자녀들의 전화를 받아 감사했다'고 하는 등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한 마음을 가진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그는 노년 초월을 겪은 백세인 대부분 일반 노년층보다 심혈관계 질환이나 당뇨병, 암 등을 앓는 비율이 크게 낮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장수인들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에 주목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약물 등을 통한 분자생물학적 수명연장 효과는 기껏해야 5년 정도"라며 "생활습관, 식습관, 운동, 자연환경이 인간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말했다. 광주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김은숙 사회복지사는 "수많은 백세인들을 접한 결과 대부분 삶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규칙적인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또 "큰 병을 극복해 백세인이 된 분들은 대부분 가족 간 친목과 사랑이 있었다"고 했다.
한국백세인연구단을 이끄는 박광성 전남대 의대 교수는 “백세인에게 어느 때 가장 행복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일할 때’라고 답했다”며 “은퇴 후에도 떤 일이든 꾸준히 해온 것이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편 건강백세포럼에선 조경아 전남대의대 교수, 서판길 한국뇌연구원장, 이승록 전남대 교수 등도 참여해 노화와 면역력, 백세인의 뇌건강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순천=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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